일년일독성경통독
스가랴 1-4장
매일성경묵상
룻기 2:14-23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룻은 어머니를 선택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로 선택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하여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비장한 각오로 베들레헴에 왔지만 룻과 나오미는 하루하루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수하는 밭에 나가 알곡을 주워 끼니를 때우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패턴은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 나갈 수는 있겠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는 없습니다. 일당을 얻는 사람이 주급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주급보다는 월급을 받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미래를 조금이나마 계획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돈으로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당일 먹을 음식을 근근히 얻으며 생활해야 하는 형편으로 결코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을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줍게 하십니다. 성경에는 ‘우연히’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낯선 여인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본 보아스는 룻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룻이 그의 가까운 친족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 사실을 안 보아스는 은연중에 룻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식사 때에 그를 불러 떡을 먹으며 초에 찍으라고 배려합니다. 그의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귀퉁에서 줍는 것이 아니라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나아가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라 합니다. 보아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베풀고 있습니다. 룻은 당연히 예상보다 많은 곡식을 주웠고,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시어머니는 놀라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고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일했음을 고합니다.
보아스라는 말을 들은 나오미는 보아스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는 “헷세드"라는 단어로 한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을 뜻하며 원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푼 사랑을 의미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룻과 나오미는 “헷세드"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얻은 헷세드는 지금은 여유있는 곡식과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나눔의 손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고, 조금씩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헷세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계획하는 미래는 단순히 음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20절에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기업 무를 자라는 것은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고엘'의 정확한 번역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원래 “되가져 오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언젠가 한 사람에게 속해 있었으나 잃어버린 사람이나 물건을 합법적으로 되가져 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는 그들이 잃었던 자녀 생산을 통한 가계 유지를 되 찾을 수 있는 합법적인 사람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이제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헷세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헷세드'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헷세드는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헷세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미래를 꿈꾸고 계획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죄 때문에 가려진 영원한 생명을 “되 가져 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업 무를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헷세드'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