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에스라 1-4장
잠 2:1-15 (개역개정)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메시지 성경
1-5
친구여,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 새겨라.
내 훈계를 받아들여 목숨 걸고 지켜라.
지혜의 세계에 귀를 쫑긋 세우고 분별 있게 살기로 결심하여라.
그렇다.
무엇보다 통찰력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기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면, 금을 캐는 채굴업자와 보물찾기에 나선 탐험가처럼 그것을 찾는다면, 어느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아는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6-8
하나님은 지혜를 값없이 주시고 지식과 명철을 숨기시지 않는 분이시기에 그렇다.
그분은 제대로 사는 이들에게 상식의 보고가 되시고 꾸밈없고 성실한 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정직하게 사는 모든 이들을 주시하시고 그분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자들을 특별히 보살피신다.
9-15
그러면 너는 참되고 공평한 것을 가려내고 모든 좋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혜가 네 절친한 벗이 되고 지식은 유쾌한 동행자가 될 것이다.
건전한 상식이 앞서 나가 위험을 찾아내고 통찰력이 너를 빈틈없이 지켜줄 것이다.
네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길을 잃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자들의 엉터리 길안내를 따르지 않게 지켜 줄 것이다.
저들은 놀이하듯 악을 저지르고 못된 짓을 기념해 잔치를 연다.
그들이 다니는 길은 죄다 막다른 골목, 여기저기 둘러봐야 출구 없는 미로일 뿐이다.
1-4절은 “만일”이라는 조건이 붙는 조건절 문장입니다. “네가 만일 ‘나의 말’을 수용하고 ‘나의 명령’을 마음에 간직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을 사용합니다. 귀에 지혜를 집중시켜 마음의 명철을 확장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본문에서 ‘명철’은 ‘지혜’와 동의어로 사용되며, 지성과 이해력, 예술가들의 능숙함이나 태도를 일컫습니다. 그리고 고대인들에게 ‘마음’은 심장이며, 의지와 지혜의 자리이고, 의사 결정 기관이죠. 따라서 부모의 명령과 말은 삶의 지혜와 능숙함과 지성을 확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조건문을 사용할 때는 실현 가능성이 있을 때, 그 결과가 명확할 때 사용합니다. 이 조건의 결과는 본문에서 크게 세가지를 말하는데,
첫째는 5절에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될 수 있다”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뿐 아니라.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는데, 대충 찾는 것이 아니라 귀를 지혜에 기울이고, 마음을 명철에 두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고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처럼 찾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도 전심으로 찾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 (1:7) 인 것처럼, ‘여호와 경외’가 곧 하나님에 대한 ‘앎’의 길입니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전달과 수집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하는 얻는 앎입니다. 따라서 지식은 인격적인 만남 없이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인격적인 만남 없이는 깨달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 강조하신 것처럼 (호 4:1, 6;6), 하나님을 아는 것과 깨달음은 여호와 경외와 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분을 공경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주시지만, 동시에 사람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혜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완벽한 균형이며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여호와 경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조한 것은 여호와가 지혜를 주시는 원천이며 그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여호와는 지혜와 지식과 명철 자체인 분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비축하시며 완전하게 걷는 이에게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정직한 자’는 올곧고 의로운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와 평행하는 ‘온전함’은 문자적으로 하면 ‘완전하게 걷는 사람’이며, 그에게 여호와는 보호 그 자체입니다.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고 성도들의 길을 지키실 것입니다.
지혜를 추구할 때 얻을 수 있는 두번째 결과는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두번째 결과는 개인적인 옳음과 의로움을 넘어 서는 것입니다. 공적인 판결과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공정함의 선한 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깨닫는 것은 결국 지혜가 마음에 들어가고 지식이 영혼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절이 ‘곧’으로 시작하지만, 이것은 본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입니다. 즉, 지식은 영혼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지식의 즐거움은 정의, 공의, 공평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통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지혜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감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근신’이 너를 지키고 명철이 너를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근신’은 신중함과 영민함이며, ‘명철’은 지성과 이해력과 사고력을 뜻합니다. 이것들이 여호와 하나님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줍니다.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처럼 정의, 공의, 공평, 지식, 신중함, 총명과 분리할 수 없는 삶의 실제적인 보호책과 안전장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혜를 구하면 악한 길에서 구출됩니다. 본문에서 ‘악하다’, ‘나쁘다’로 번역된 잔어는 비열하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나 사악하고 악의에 찬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런 악한 사람으로부터 건져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단락의 핵심 단어는 ‘길’입니다. 악한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합니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져 있습니다.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삶을 살던 그 끝은 악한 결말을 가져 옵니다. 그런데 어둠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악행을 기뻐합니다. 비열하고 나쁜 것을 습득하고 생각하며 적용하는 일을 부지런히 즐깁니다. 그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즐거워한다는 말은 가나안 사람들이 제사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라고 합니다. 황홀경에 빠진 듯 예리한 소리를 지르면서 기뻐하는 행위를 표현합니다. 지혜자가 여호와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패역한 행위를 즐기는 자들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길이 구부러져 있고, 그 행로는 패역합니다. 지혜는 이런 길에서 우리를 구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선한 길로 인도하며 혹시 빠질 수 있는 악한 길에서 우리를 구하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지혜를 쌓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간절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