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창세기 10-13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1장 29-42절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한이 증거하는 예수님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세가지로 밝힙니다.
첫째,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말합니다. 구약에서 어린양은 유월절에 사용되었고,(출 12장),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매일 드리는 희생 제사(출 29:38-43), 죄를 지은 백성을 위해 고난당하는 ‘여호와의 종’을 묘사하는 데(사 53:1-12)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작고 약한 어린양을 통해 자기 백성의 ‘구원’과 ‘속죄’를 이루셨고 그들과의 ‘교제’도 확보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신 예수님(빌 2:6-8)이 바로 이 어린양의 실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서 희생제물이 되십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없앴습니다.
둘째, 요한은 예수님이 침례 받으실 때의 일을 묘사합니다. 이 때의 일을 세번이나 강조하며 “성령이 그리스도위에 임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특히 침례요한은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의 위에 ‘머무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기름 부음입니다. 그리고 유대교 안에서 전에는 본적 없는 기름 부음으로 메시야적 기름 부음입니다. 더구나 이 예수는 침례에 있어서 단지 자기 자신만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령으로 침례를 줄 것입니다. 요한은 메시야 시대가 도래 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셋째, 침례요한은 34절에서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고 합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지위를 갖고 계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 성령이 메시아 위에 내려와 머물 것이라고 -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이를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입증하신 아들이라는 그의 믿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믿고 고백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침례요한의 이같은 선포가 있은 다음날 예수님이 그들 앞을 거니셨습니다. 이에 침례요한은 예수님을 보며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에 두 사람은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함께 있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함께 거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후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형제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하고, 예수님께 베드로를 데리고 옵니다.
안드레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침례요한은 다른 사람을 지목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를 가리켜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드레는 주저함 없이 인생의 경로를 수정했습니다. 안드레가 추구하던 인생의 목적은 “메시야"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요한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어도 그는 스스로 메시야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데 굳이 그를 따라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안드레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거하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베드로에게 “메시야"로 소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예수님을 랍비로 부를 수 있지만, 예수님과 교제하며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그를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로 부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도 예수님을 주목하지 않고, 그를 따르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쫓는 삶을 살고 있는지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우리의 메시야 주 예수님을 쫓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