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통독
역대하 8-9장
매일성경묵상
나훔 1장 1-15절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 보시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본문으로부터 150년전 요나를 통해서 이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니느웨 백성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지만 그들이 회개했을 때 노하기를 더디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 말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죄인을 형벌 받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입니다. 즉, 하나님은 죄를 그대로 간과하지 않으시고 때가 이르면 죄인을 반드시 다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또 하나의 얼굴은 죄악을 그대로 방관만 하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두가지 성품을 발견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그러나 동시에 의로우신 하나님.”
그분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의 공의 로우십니다. 그래서 죄를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이제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질투와 보복'은 아닙니다. 질투라는 말은 본래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향한 나의 감정이 표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jealous”인데 이는 “열심이 있다"는 말과 같은 어근을 가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있다"는 말이나 “질투한다"는 말은 모두 감정이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을 사물을 적당히 처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깊은 감정을 가지고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역사와 인간의 삶의 현장을 보십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서 깊은 심려를 가지고 그들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보복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악인에 대한 징벌의 개념을 가집니다. 내가 손해를 보았으니 너도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그런 차원의 보복이 아닙니다. 악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질투와 보복의 하나님" 이 말은 “사랑과 의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단호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깊이, 그리고 사랑의 깊이를 의미심장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이 표현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동시에 죄인을 그대로 간과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악을 처리하십니다.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 그리고 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집행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앞에 악한 존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두려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치시기도 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즉 믿는 사람을 징벌하기 위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들어서 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 삶 속에서 악을 징벌하시고 의를 실현하시기 위해서 나에게 다가 오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동시에 경건한 삶의 자세가 동시에 요구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