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역대상 23-25장
매일성경묵상
요나서 1장 1-17절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는 열왕기하 14장에 보면 이스라엘 왕 여러보암이 크게 왕성할 것을 예언한 선지자 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한번 확인 시켜 준 능력의 선지자 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비둘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제사를 드릴때도 비둘기를 가지고 제사를 드릴정도로 신성시 여겨 졌던 새 입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예나 지금이나 메세지를 전달하는 새로 여겨집니다. 노아때 40일 홍수가 일어난후 노아가 물이 스며들고 땅이 올라옴을 알아 보려했을때 처음에는 까마귀를 내 보냅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되 돌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생각을 안했는데 비둘기는 지면에 물이 없을 때는 빈 몸으로 돌아오고 땅이 물위로 올라 왔을 때는 감람 잎사귀를 물고 옵니다. 비둘기는 소식을 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보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욥바로 내려가고 다시 다시스로 가는 배에 자기 몸을 싣습니다.
왜 요나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명령에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려 했을까요? 요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무관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동족도 아니고 그들은 가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웃 나라 였기 때문에 그들이 심판 받거나 구원 받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내려 가는 배를 탄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요나는 두려웠습니다. 먼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만약 그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전혀 효력이 없다면 그는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반대로 요나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회개와 구원을 외치게 되면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풍성하게 받고 있는 은혜를 그 더러운 이방인들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 사상이 있기 때문에 혹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무관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극복해야 합니다. 사실 요나는 스스로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하셔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나와 다른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도 원래는 니느웨 사람들처럼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파"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서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이 아끼는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했을 때 거절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복음을 듣자마자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하며 성령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아 평화와 복음을 전하는 요나들입니다. 다시스가 아닌 니느웨로 힘있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