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창세기 21-23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2장 13-25절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본문은 예수님이 공생애 첫번째 유절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성전에서 있었던 성전 정화 사건을 말씀합니다.
본문의 성전 정화 사건이 언제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은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 복음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다른 공관 복음에 나타난 것과 같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건을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 행동을 비판하시며 행위로는 구원 받지 못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니고데모를 만나기 전 사건으로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요한복음이 시간순서로 사건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실 때 마다 성전 전화 사건이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이번 한 사건으로 고쳐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다음날 바로 다시 상을 펴고 장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성전안에서 장사를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말한 것처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먼 곳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 차원에서 양, 소, 비둘기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오는 길에 다치거나 하면 제물로 쓸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환전을 해 주는 서비스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평소에 로마돈을 사용했는데 성전에서는 유대 돈만 받기 때문에 일년에 한번 내는 성전 세금을 위해서 환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환전과 장사는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성전 세금을 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멀게 된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물을 사야 했고,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약간의 이익만 취해도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들 뒤에 제사장이 있었고, 사두개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락하고 자릿세를 받는 것이죠… 다른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화내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돈이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교회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교회도 성도들에게 서비스 하기 위해 카페도 만들고, 서점도 만들고, 은행 ATM기를 들여다 놓고, 유치원, 학교도 설립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며 시작합니다. 물론, 투명하고 건강하게 운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복지 사역에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권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운영권에 대해서 서로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담임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이권이 커지면 암투가 시작되며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그런 이권이 생길 정도로 교회가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예루사렘 성전처럼 타락한 교회들의 모습을 보실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도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행동에 대해서 “표적”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헐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 바로 그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구약의 모습을 허무시고 새 교회 시대를 시작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심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