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민수기 5-7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11장 28-37절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우리 성경에는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마리아와 함께 있던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례식장에서 곡을 하듯이 여럿이서 함께 슬픔을 드러내는 것은 유대인 문화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심령에 비통함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비통하다는 의미는 고대 헬라어에서 말이 전쟁 혹은 경주에서 콧김을 내뿜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단어를 인간에게 사용할 경우 격분, 격노, 혹은 분노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단순히 슬픔에 잠긴 것이 아니라 분노의 마음을 표현했을까요? 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격노하였을까요? 예수님이 마르다나 마리아 혹은 조문객들에게 분노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실재성의 빛 속에서 바라볼 때의 이 슬픈 장면의 공허성 때문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부활을 확실히 아신 예수님은 죽음앞에 한없이 슬퍼하는 인간의 모습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생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무덤에서 승리는 주장하는 믿음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람들은 패배에 압도된 듯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신 것은 죽음과 그것이 야기하는 절망에 대해 분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 눈물은 나사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는 이제 곧 나올 것이고 그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고통가운데 울부짖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며 마음이 동하여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눈물을 얇은 지식으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요? 인간들의 삶을 보면 죽음 앞에 슬퍼하며, 각종 재난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코로나 때문에 울부짖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며?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둘러싼 무질서, 큰 울음소리와 부르짖는 소리, 죽음앞에 무기력한 죄와 죽음의 결과 앞에서 분노하시며 이런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 예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고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