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통독 :
주일 통독은 창세기 7-9장입니다.
월요일은 창세기 10-13장입니다.
묵상 본문: 누가복음 2장 1-20절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누가는 역사를 기록하듯이 그 때가 어느 때인지 정확히 밝히며 본문을 기록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역사책에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주전 63-주후14)로 기록되며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였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31년에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이기고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행사했고 자신을 신격화 했습니다. 남겨진 문서들에 의하면 그는 제사와 찬송을 받아야 하는 구주,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칭하고, 그의 생일을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으로 기록했습니다. 세상의 황제가 찬송을 받고 있는 그런 시대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백성들을 통제하고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새롭게 호적을 정리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본문 속의 예수님은 이땅의 황제에게 지배 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부모는 황제의 명에 따라서 호적하기 위해 갈릴리에서 베들레헴으로 가야했고, 힘들게 내려간 베들레헴에서는 숙소를 찾지 못해 가축들이 있는 축사에서 출산 해야만 했습니다. 무엇하나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힘이 아닌 하늘의 힘을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밖에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리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만일 예수님이 세상의 힘을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 나셨다면 오히려 저는 예수님의 탄생이 조작되었거나 신격화 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힘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고, 힘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가 갈 수 있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탄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누가는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기적과 같은 일인데,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할 때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표적은 예수님의 실체를 볼 수 있도록 안내 판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표적이라는 것은 예수님은 이 세상 모두가 다가갈 수 있는 분이고 모두에게 구원의 기쁨의 소식을 줄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은 모두가 다가 올 수 있도록 낮은 인간의 몸으로 구유에 계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있는 권력에서 예수님을 찾고, 성공의 길에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과연 그곳에 예수님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목회 할 때 많은 정치인들이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원로 목사님께서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그분을 뵙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일마다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강단에서 정치인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기쁘게 생각하며 돌아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 정치인들은 과연 예수님을 만났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형교회의 장로님이 되고 싶은 정치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의 힘이 정치인을 낙마 시킬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과연 그 곳에 예수님이 계실까요?
만일 지금 이 시점에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다면 어디에서 태어나실까요? 그리고 몇명이나 예수님의 탄생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찾아가 경배할까요? 예수님이 오신 길, 가신 길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가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