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야기 레위기 - 정결법 2
일년일독성경말씀
잠언 1-3장
매일성경묵상
이사야 40:1-11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본문 배경)
이사야서는 오늘 본문을 기준으로 전반부 (1-39장)와 후반부 (40-55장, 56-66장)으로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전반부는 주전 8세기 유다를 위협했던 앗수르가 예언자 이사야의 등장에 역사적 단초를 제공했지만, 후반부에는 완전히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여호와의 심판 아래 놓인 이스라엘의 주적은 주전 6세기 말엽에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입니다. 전반부에서 예언으로 선포된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이 후반부에서는 이미 성취된 역사적 사실로 전제됩니다. 유다는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폐어가 됐고 많은 주민은 바벨론으로 유배를 당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전반부에서 이사야 선지자의 고발과 심판의 메시지가 위로와 구원의 메시지로 바뀝니다. 메대-바사 왕 고레스에 의한 바렐론의 멸망과 유배민의 해방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포됩니다. 요약하지만, 40-55장의 말씀은 주전 587년 유다가 멸망한 이후 바벨론 유배 공동체에서 활동한 예선자가 선포한 것이고, 56-66장의 말씀들은 유배기 이후 예루살렘 공동체에 선포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바렐론에서 말씀을 선포한 무명의 예언자를 제 2 이사야,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선포한 예언자를 제 3 이사야로 구분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입장은 40-66장의 말씀이 8세기 예루살렘의 이사야의 예언이었다고 봅니다. 이사야가 자기 시대뿐만 아니라 대략 150년 이후에 있을 일도 예언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먼 미래에 있을 일도 예언자들에게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예언자의 예지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미래에 관해 현재 있는 일처럼 정확하게 예언 할 수 있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이유나 배경에서 동시대 사람들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을 미리 말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야를 포함한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자기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사건이나 현상을 배경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들의 직접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그들의 현재와 관련된 선포였습니다. 따라서 8세기 앗수르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이사야 시대 사람들에게 5세기 바벨론의 멸망과 유배민들의 해방은 이해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유배기에 바벨론에서 활동한 예언자를 상정할 때만 이사야서 후반부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의 경우처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은 그 예언자의 이름 아래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제 2이사야의 선포는 한 권의 책으로 전해지지 않고 기원전 8세기 이사야 선지자의 책에 첨가된 것입니다. 원래는 바벨론에서 활동했던 한 예언자의 예언이 이사야서에 들어와 이사야서와 한권의 책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구약 성경의 이사야서는 1장에서 66장까지의 모든 말씀이 예루살렘의 이사야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되었고, 제 2이사야와 제 3이사야는 각각 포로기 유배 공동체의 이사야와 포로기 이후 귀환 공동체의 이사야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구성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를 통해서 심판과 구원의 연속성이 강조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심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면 구원 약속의 성취 또한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후반부의 중요 주제입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에 유배 중인 유다 백성들을 향해 위로하라는 명령을 두번 반복하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하나님과의 파괴되었던 관계가 회복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시대가 끝나고 위로를 받는 새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587년 바벨론을 통해 임했던 심판으로 절망가운데 살아야 했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마침내 기쁜 소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은 “여호와의 귀환과 그의 통치"가 핵심 내용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곧게 내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대로'는 원문에 따르면 ‘우리 하나님을 위한 혹은 우리 하나님께 속한 대로'이며, 광야에 큰 길을 닦는 목적이 여호와께서 지나가시기 위함임을 보여줍니다. ‘광야의 대로'는 군사적 원정이나 상업적 교역에 주로 이용되는 고대 근동의 ‘왕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3절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 여호와를 위해 길을 보수하고 확장하라는 명령입니다. 왕되시는 여호와께서 돌아오시는 길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서 6-8절에서 예언자는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하면서 외쳐야 할 내용에 관해 묻습니다. 그러자 “말하는 자의 소리"가 외칠 내용을 알려 줍니다. 6절 하반부에서 7절 상반부는 풀과 꽃의 비유를 사용해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심판 시대의 종결과 여호와의 귀환을 선포하는 위로의 말씀 다음에 인생의 덧없음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문맥을 따라 이해해보면, 바벨론과 바사와 같은 대제국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다 풀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복자들이 자랑하는 정치적-군사적 힘도 들의 꽃과 같을 뿐임을 알려 주십니다. 반면에 풀과 꽃의 덧없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과 변함 없음과 대조됩니다. 지속적으로 남아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사람의 능력이나 업적이나 영화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 주십니다. 8절 하반부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회복에 관한 모든 위로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과 없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소식은 우리를 위로하지 못합니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와 웃음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를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주고, 회복할 근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