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일독 성경 말씀
민수기 21-23장
매일 성경 묵상 눅 13:10-21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꼰대”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사전을 찾아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변형된 속어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예수님의 행동을 판단하는 “꼰대”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곳에는 18년 동안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불러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회당장이 화를 내기 시작하며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회당장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관리하는 회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화가 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나 나귀를 풀어내어 물을 먹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축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18년 동안 귀신 들려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안식일에 병고침을 받은 것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행동입니다.
회당장은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과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날입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안식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로 하나님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날은 세상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신 다는 확신으로 일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안식일이 아닌 평일에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한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으로 판단하고 화를 낸 것입니다.
저도 이제 50을 넘기면서 내 자신을 돌아볼 때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경험, 생각에 갇혀 다른 분들의 생각과 경험을 받아 들이지 못할 때가 있는지 스스로를 반성해 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이 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겨자씨와 누룩을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중의 하나인데, 그가 자라나면 공중의 새들이 깃들 정도로 성장하고, 누룩을 서말 가루에 풀면 부풀어 오른다고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장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장해서 받아 들이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부풀어 올라 다른 사람에게 나눔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생각에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스스로 생각을 확장해야 합니다. 스스로 받아들임의 폭을 넓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당장처럼 “꼰대”가 되어 다른 사람이 회복하는 모습에 화내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생각을 무조건 다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다원주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으로 주님의 치료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막아서는 결코 교회가 확장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어릴 때 담임 목사님이 교회에서 청년부가 청바지 입고, 기타치고, 드럼 연주하는 것에 대노하신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때 청년부 형들이 많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 힙합 찬양 팀 공연에 대해서 찬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목사님의 생각으로 제가 지금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꼰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코로나 이후에 어떤 세대가 펼쳐질지 두렵지만 그 세대에 필요한 복음과 열정으로 기도하며 준비하는 열린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새로운 세대를 열린 마음으로 준비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