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삼상 27-29
눅 20:41-21:4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인간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어떤 권위로 성전을 정화하고, 가르치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시며 다윗이 “주"라고 지칭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주'라고 지칭했지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주의 권위로 성전을 청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아 지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주로 인정한다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46절에 이와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율법을 필사하고,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용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는 시편의 말씀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시고, 그 사실을 안다면 서기관들의 삶은 어떠해야 했을까요?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닮아 스스로 겸손하고,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했습니다. 긴 옷은 정복이나 제복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서기관이라는 것을 알아 주길 원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네 가지 모습은 일상에 나타나는 서기관들의 오만함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선호했고, 영광 얻기를 추구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다면 46절의 행동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는 것은 그들의 돈을 강제로 빼앗는다는 의미 보다는 그들이 정성껏 드린 헌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을 돌봐야 하는 성전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 의롭게 보이기 위해서 겉으로 길게 기도하는 모습만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성전의 여인의 뜰이 있었는데, 이 곳은 유대 여성들과 자녀들이 예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열 세개의 ‘헌금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헌금함은 황소 뿔이나 나팔 보양으로 돈을 빼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헌금 함은 금속으로 되어 있어서 떨어지는 동전 소리로 헌금 액을 추정할 수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이 두 렙돈의 헌금을 넣었다고 말씀합니다.
두 렙돈은 당시에 가장 작은 가치의 동전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의 약 100분의 1 혹은 132분의 1의 가치로 평가합니다. 일당이 10만원이면 두 렙돈은 1500-2000원에 해당합니다. 부자의 돈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액수입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합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서 헌금을 넣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소유한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로 번역된 비오스라는 단어는 ‘생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생명을 넣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 렙돈을 넣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그는 두 렙돈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은 이런 과부가 드린 헌금으로 겸손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식하고, 교만하고, 높아지는 삶을 살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록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주인의 모습을 닮아가지 못하고, 서기관의 모습을 닮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께 삶을 드리며 겸손히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겸손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순절 29일차 묵상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