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신명기 18-20장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은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가 어떠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데, 11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갈릴리와 예루살렘 사이에 사마리아가 있는데, 어떻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당시에는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유대인들이 부정한 사마리아 지역을 밟지 않으려고 이용했던 우회 도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회로는 두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이었습니다. 이 길은 유대인들의 지역인 갈릴리도 아니고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마리아도 아닙니다. 경계선은 두 지역 마을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나병환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누가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시다가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경계선에 있는 한 마을에 들어가실 때 나병환자 10명이 멀리서 예수님을 봅니다. 나병환자는 공동체에서 제외되고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갈릴리 마을에도 사마리아 마을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중간 지대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큰 소리로 긍휼을 구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약에서 나병은 하나님 외에는 치유할 수 없는 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 치유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에게 가라 하신 것은 레위기 13-14장의 규정에 따른 것으로 나병 환자들은 부정한 자들이기 때문에 제사장의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질병이 나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속건제, 속죄제, 그리고 번제와 소제를 드려 죄 사함을 받고, 정함을 인정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과정을 잘 아셨기 때문에 그들이 빨리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공동체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고 있을 때는 그들의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가는 길에 나병이 깨끗해 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병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이 문드러지고, 떨어져도 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놀라고, 힘들어 하는 질병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부정하다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얼굴도 내놓지 못하고,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들의 얼굴이 변하여 깨끗함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10명의 나병환자는 어짜피 가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9명은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고,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깨끗함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는 것은 짧은 길을 같이 걸을 때 알았다는 것입니다. 먼 길을 걸어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에 도착했을 무렵이 아니라, 10명이 같이 있을 때 서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두개로 갈라졌습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너무 기뻤고 감사했지만, 제사장에게 빨리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사마리아 인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큰 소리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이 이방인 외에는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할 때 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해 봅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수평적 관계속에 있는 두 경우를 생각할 때 하는 것입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제사장”을 동급으로 놓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그의 제사장에게 가는 것은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 해야 할 일”과 “내 일” 사이에 고민을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인에게 구원을 선포 하신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예수님께 먼저온 것으로 그의 믿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일과 하나님의 일 사이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앞서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일과 비교하며 우선 순위를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삶입니다. 그것이 무익한 종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