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삼상 11-13장
눅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세리장이고 부자였습니다. 부자로 살았지만, 사람들은 세리들이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로마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생각해서 나라와 민족을 파는 매국노로 취급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18장에 등장하는 과부, 세리, 어린아이, 맹인 거지처럼 세리장 삭개오도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신분이었습니다. 물질은 풍족했지만, 만족이 없는 삶을 계속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삶속에서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서는 이미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죄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죄인 취급 받아오던 삭개오는 유명한 예수님을 꼭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누가는 “제테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원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원했지만 사람들은 삭개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대로변에 있는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갑니다. 돌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몸통이 굵고 가지가 옆으로 뻗어있어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올라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고,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앞에서 위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아셨고, 지체 없이 “오늘” 그의 집에 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마 삭개오는 모든 것이 신기했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를 먼저 아는 척하지 않았는데, 먼저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이름을 부르시고, 그 집에 유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삭개오는 즉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신 것 때문에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이 당시의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이들의 시각에서 부정과 정결은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표시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죄인’으로 칭했습니다. 이런 죄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고 마시고, 숙박하는 것은 그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그의 집에 들어가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삭개오를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이 행동은 삭개오를 초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집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변화를 가져 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나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는 회개의 반응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의롭게 수행하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반응을 보시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으셨습니다. 그의 집에 유숙하시며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사람들은 외형을 보며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구원 받았을거야.. 저 사람은 저런 일을 하는 것 보니 구원 받지 못했을 거야.. 우리의 외형적인 모습이 구원의 자격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누구인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 성경을 몇번 읽었는가? 예배 참석했는가? 등의 외형적 요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변화된 삶을 사는가? 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18장에 나오는 부자 관리는 변화된 삶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며 구원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삭개오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잃은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리 기다리십니다. 삭개오처럼 예수님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는 믿음과 헌신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직 믿지 않는 분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열어 그와 그의 집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사순절 2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