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하시며 찬양을 함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년 일독 성경 말씀
사사기 19-21장
시편 62편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오늘 본문에 “오직"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아크'라는 불변사가 1,2,4,5,6,9절에 나타납니다. 어쩌면, 62편의 말씀은 “오직"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오직이라는 단어를 붙여 번역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오직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합니다.
오직 대적들은 다윗을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합니다.
오직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입니다.
오직 천한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됩니다.
다윗은 세가지 부류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할 행동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윗은 대적들이 어떤 자들인지 말할 때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떨어뜨리려 했고, 거짓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헛되고, 거짓됩니다. 개역성경은 “진실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셋째, 다윗은 하나님을 고백할 때 “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반석이고, 구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요새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확실하게 알았고,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사무엘상 18장을 읽어보면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했다는 말이 4번이나 반복됩니다. 5절, 14, 15, 30절… 다윗은 모든 일에 지혜롭게 행하고, 크게 지혜롭게 행하고, 모든 신하보다 지혜롭게 행합니다.
오늘 사무엘 상에서 지혜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지혜롭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구약에서 지혜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호크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18장에서는 여기에서는 좀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샤칼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지식 있다. 영리하다, 무엇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한단계 더 나아가 Insight가 있다는 뜻입니다. Insight가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통찰력 즉 내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찰력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주위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요즘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Insight”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폭”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과거 학교폭력 주동자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습니다. 그들이 조금만Insight가 있었다면 과연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들을 했을까요? 학생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인터넷에서 뿐 아니라 현실 세상에서 Insight없이 “욱”하는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혜롭게 행동했습니다. 통찰력있는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혈기 왕성한 나이에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다윗의 대표적인 삶의 모습이 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고,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을 하시도록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묵상이란 자기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저절로 풀릴 때까지 또는 삶이 풀어줄 때까지 문제를 자기 안에 품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욱’하는 성질을 냅니다. 그런데 다윗의 삶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풀릴 때 까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 해 주실 때 까지 문제를 안고 갑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오직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하루 되기를 간구합니다.
사순절 21일차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