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암송 60-36
일년일독성경
요한복음 10-13장
매일성경묵상
사사기 2장 1-10절
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차이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세대는 광야에서 자라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는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세대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6절 이후부터 여호수아 세대를 회상합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 그들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 세대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겼으며,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소유했습니다.
여기서 섬겼다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가 사물을 가리킬 경우 예를 들어 밭을 섬기다 라는 것은 밭을 경작하다 가꾸다 돌보다로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람과 관련되어 사용되면 누구를 위하여 일하다, 봉사하다 또는 노예가 되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왕을 섬기다 라는 의미는 왕을 위해 일하는 것이나 또는 노예가 되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근거된 자원함으로 일하는 순종하며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7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이 그리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순종의 결과로 그들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9절에 여호수아가 “그의 기업의 경내"에 묻혔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일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7절에 “동안"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만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입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는 목격자로써 그 사건의 의미와 뜻을 이해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목격은 단순히 시각을 통하여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그분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확실이 아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들이 다 조상에게로 돌아간 후 다음 세대는 대조된 모습을 갖습니다. 10절 하반부에 2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기를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그리 하였느냐"며 책망했고, 그 결과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간극이 생겼을까요? 물론, 광야를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가 갖는 물리적인 경험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전후 세대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전쟁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자료와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 전쟁의 심각성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광야에서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이 경험하게 한다면 자녀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서에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에서 부지런히 라는 말은 단순히 행위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으르지 않고 반복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는 예리하게 마음 속에 뿌리 박히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반복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 속에 뿌리가 박혀서 다른 것이 침범하거나 쓰러뜨리지 못하게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먼저 부모가 자신의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항상 자신의 마음을 지배해야 할 때에야 자신의 자녀의 마음에 말씀을 깊이 뿌리 내리도록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시원치 않은 확신과 뜨겁지 않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자녀들에게 그러한 신앙의 유산을 남겨줄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가 먼저 말씀이 가득한 충만한 상태에 있어야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앉았을 때에는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에나 일어날 때에나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론하다는 말은 이야기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이야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지속적으로 자녀에게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아마도, 출애굽 1세대는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사사기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 나만 알고 간직하는 것은 아닙니까? 믿음은 유전이 안됩니다. 믿음은 부단한 노력으로 전수 되는 것입니다. 도자기 만드는 스승이, 칼을 만드는 스승이 제자에게 수년간 그 기술을 전수하듯 끝까지 우리가 가진 믿음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이야기 할 때 다음 세대에 전달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자녀에게 여러분의 믿음을 여러분의 방법으로 알려 주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