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본문: 출애굽기 39-40장
매일성경 묵상 누가복음 9:28-36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용모라는 단어는 누가복음에만 나오는데 헬라어로 “에이도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출애굽기 26장 30절에서 나오는 성막을 연상하게 하는데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출애굽기의 “양식”이 헬라어로 에이도스가 됩니다. 이 용어로 누가는 예수님을 성막과 연결하면서 요한복음 1장 14절처럼 성육신의 임재를 강조하게됩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 된 후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 하실 것을 말합니다.
두 사람이 영광 중에 나타난 것은 그들이 천상의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엘리야를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로 이해했습니다. 두 사람이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은 천상의 존재들이 하늘에서 회의 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모세와 엘리야는 종말론적 선지자의 모형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자기 백성에 의해 고난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지상에서 고난의 길을 가지만 원래 천상의 존재이고 부활과 승천하시게 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별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별세라는 단어는 “떠나다”라는 의미의 엑소도스 (ἔξοδος)가 사용되어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출애굽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엑소도스는 예루살렘에서 성취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죽음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목표입니다. 엑소도스는 베드로후서 1:15에서도 죽음을 가리킵니다. 누가는 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성취할 죽음을 “엑소도스” 으로 표현했을까요? 구약의 출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방된 사건입니다. 출애굽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경험했듯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한 별세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예루사람으로 향하고, 그곳에는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그것으로 끈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하여 나가는 “엑소도스”라는 사실을 누가는 강조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잠에서 꺠어난 베드로는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 횡설수설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려고 하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초막 셋을 지을 수 있도록 간청합니다.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을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준비하려 합니다. 초막은 “스케너”인데, 출애굽 이후 세운 성막 또는 광야의 백성이 임시로 거주했던 초막을 가리킬 때 사용된 용어입니다.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베드로는 상기된 기분으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그들과 함께 산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가야 했고, 예수님은 고난의 길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없지만 때로는 그 환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현실입니다. 고난의 길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이를 깨우치기 위해 구름속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성 육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들은 고난의 예수님을 따라가기 보다는 평온하고 감동적인 분위기에 머물러 있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함께 걸어가는 열린교회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