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출애굽기 30-32장
누가복음 8장 40-56절
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셨을 때 많은 무리가 환영하기 위해 마중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인파 중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회당은 외세의 침략으로 해외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율법을 교육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치리하던 유대인 자치 기구 였습니다. 해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했지만, 디아스포라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면서 각 마을에 회당을 만들고 회당을 통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당에는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곳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힘도 있었고, 특히 회당장은 마을에서 덕망있는 유력인사가 맡았기 때문에 회당장은 나름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회당장이 애타게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가복음에 보면 12살 밖에 되지 않은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소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은 애타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가기 집에 오셔서 딸을 구해주시기를 요청했고, 예수님은 야이로를 따라 그의 집을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리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지난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입니다. 혈루증은 몸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나오는 병으로 병 자체로도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이 병으로 인하여 이 여인은 부정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레위기 15장 25-30절에 나오는데,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은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할 때의 부정과 같으니"라고 규정하여 유출이 그치면 제물을 드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출이 멈추지 않았던 이 여인은 12년 간 부정하다 여겨져 주변의 사람들을 만지지도 못했고, 다른 사람도 이 여인을 만지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여인의 상황을 조금 더 구제적으로 말씀합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의사들은 이 병을 고칠 수도 없었는데 돈만 받아 챙겨 괴로움만 받았고, 가진 것을 다 허비하여 살 소망이 끊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오직 예수님 만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예수님이 거라사인의 마을에서 돌아오시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앞에서 가시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만일 이 상황에서 예수님을 놓치면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을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지막 기회이고 확실한 기회라는 생각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이 순간 혈루증이 즉시 그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시고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냐고 묻습니다. 이 여인은 옷가에 손을 대었지만, 예수님은 당신에게 손을 대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간절함과 믿음을 아셨고, 당신에게서 능력이 나갔음을 아신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장의 딸이 죽었다고 말하며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병을 고칠 수는 있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말씀하시고, 그 집에 가십니다.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두고 울며 통곡했지만,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말씀하시며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서에 자주 나타나는 "샌드위치 구조"인데, 이는 두 사건 사이에 또 다른 사건이 A - B - A' 형식으로 배열되며 두 사건의 비교,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이 분명하게 들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두 사건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 두이야기 속에는 비교와 대조가 나타납니다. 혈루증 여인과 야이로의 딸은 지난 12년간 살아온 삶이 비교됩니다. 12년간 온갖 고생하며 사랑은 커명 멸시 천대 받으며 살아온 여인과 유력한 집안에서 사랑 받으며 살아온 야이로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다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믿음" 이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또한 부정한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나음을 입었고, 예수님은 부정한 시체를 잡으심으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정한 부정을 부정하며 긍휼과 은혜로 치료와 생명을 부여 하셨습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예수님의 필요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아픔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12년만 살고 죽었던 아이처럼 순서 없이 죽게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아플때, 고통스러울 때, 극한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성도 되기를 기도합니다.
야이로 딸의 소생 - 일리아 레핀, 야이로 딸의 소생, 1871년, 캔버스에 유채, 229x382cm, 국립러시아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19세기 러시아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일리아 레핀(Ilya Repin, 1844-1930)은 1871년에 <야이로 딸의 소생>을 그렸다. 레핀은 러시아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듯 어린 딸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아이의 머리맡에는 하얀 꽃이 놓여있고, 회당장 야이로는 흰 모자를 쓰고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두 손 모아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다. “주님, 제 어린 딸이 죽었습니다.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그곳에는 아이의 어머니와 세 명의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있다. 아이의 어머니도 가슴을 부여잡고 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으며, 제자들도 장례식장에서처럼 그 부모 뒤에 근엄하게 서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마르 5,41)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의 분위기와는 달리 부드럽게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 소녀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신다. “얘야,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그냥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우리의 일상도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 히브리어인 ‘야이로’라는 이름에는 ‘주님이 비추신다.’, ‘주님이 일으켜 주신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야이로라는 이름을 통해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생명으로 비추고 일으켜 주셨듯이 오늘도 주님께서는 성체를 통해 우리를 빛으로 비추시고 일으켜 주신다. 성체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몸에 손을 대며 진심으로 고백해야 한다.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출처 - http://pds.catholic.or.kr/attbox/bbs/album/read.asp?gubun=100&maingroup=1&seq=31&group_id=5&sub_id=2&page=1&id=1760&table=gnalbum&user_auth&=R&RecHostcle=&getSeq=31&keyfield=&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