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마태복음 24-26장
매일성경묵상
출 34:18-35
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25 너는 내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26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18절부터는 종교 절기와 의무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데, 절기에 대한 말씀은 이미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여호와께 절기를 지켰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31:5-6). 훗날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특별한 절기를 지정합니다(왕상 12:28-33). 이처럼 우상을 만들면 절기를 정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영원토록 지켜야 할 정당한 여호와 종교적 절기를 다시 한 번 상기 시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1년에 세 번씩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두차례나 강조하십니다. 이 말씀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한곳에서 드려질 것이며, 그럴 경우 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떠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생길 것을 시사합니다. 둘째, 이 말씀은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한곳에, 그것도 먼 곳에 모여서 예배 드리는 동안 주변의 적들이 공격할 수 있고,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년 세번씩 하나님 앞에 보일것이라고 명령하십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모든 것을 기록하라고 지시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모두 적었고 이 일을 위해 시내산 정상에서 다시 40일을 지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과연 때에 따라 절기를 지키는 행위를 원하실까? 남자들이 일년에 세번 하나님께 나오는 행위를 원하실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 예비군 훈련 받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비군 훈련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다 내려놓고 2박3일 훈련한다는 것은 솔직히 짜증나는 일입니다. 훈련에 들어가보면 아무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은 없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훈련 시키는 교관들도 예배군들을 움직이며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요즘에는 법이 강화되어 복장 검사도 철저히 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훈련 받을 때는 왜 이런걸 하나 싶을 정도로 훈련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왜 예비군 훈련은 힘든 시간일까요? 무엇보다도 군복을 입는 것 자체를 싫어 합니다. 군 생활이 행복했던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 시절로 되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의 경우는 예비군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전쟁을 생각하며 지역을 지킨다는 의무감에 고취되어 훈련에 참석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과연 전쟁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훈련이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이 괴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행위는 있었지만, 결코 애국심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것처럼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무감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