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2일
- ncyeollin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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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시141:1-10]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시편의 전체적인 주제를 말하라고 한다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시작부터 의인이 등장합니다. 1절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리고 1편 6절에보면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하면서 1편이 마무리 됩니다. 1편은 시편 150편 전체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인데, 복 있는 사람이 가져야할 삶의 태도와 그 결과에 대해서 1편에서 전체의 큰 그림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곳곳에서는 개인적인 아픔, 기쁨, 회개, 찬양의 기도도 많이 있지만 시편 전체를 흐르는 중심 내용은 의인의 삶,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악인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의인의 삶을 살 것인가? 에대한 기도문이 많이 있죠.
오늘 분문도 역시 의인과 악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악인을 따르지 않고 의인의 길을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또 한번 느끼는 것은 역시 의인이 되는 것, 의인의 길을 가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 하면
이것은 단순히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언뜻 들으면 마치 하나님을 하인 부르듯이 불렀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상황이 그것이 아닙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간구냐 하면 내가 오시옵소서.. 하나님이 내게 온다는 것은 어떤 것이죠? 내가 하나님의 사람, 즉 의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맘속에 들어와 주십시오. 하나님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시편 기자는 이러한 기도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린다고 합니다. 분향으로 받아 주시고, 저녁 제물로 받아 달라고 합니다. 역시.. 의인이 되는 길은 쉽지 않죠.
두번째 의인이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입 앞에 문지기를 세워야 할 만큼 절박하고 실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입술에 파수꾼을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내 입술로 나오는 모든 말에 대해서 검열을 한다는 것이죠.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이 내 입밖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해서 긴장하고, 조심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해서 의인이 갑자기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마디 잘못한 말, 한마디 무심코 던진 말, 혹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처음에는 악한 의도가 없었어도 결국에는 스스로 악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고 경험했습니다. 작은 불씨로 큰 나무를 태운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이 있듯이 잘못된 말은 우리를 태워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입술에 파숫꾼을 입에 문지기를 세워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만큼 의인이 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셋째, 의인이 되는 것은 아파도, 악인이 되는 것은 쾌락을 주기 때문에 의인이 되는 길이 어렵습니다. 4절에 보면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악인들은 진수성찬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어떻습니까? 나를 칩니다. 책망합니다.
그러나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치더라도 그것을 은혜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책망하더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쉬울 것 같습니까?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말, 칭찬만 해주기를 원합니다. 먹기 좋은 것, 단 것..으로 채워 주는 쪽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침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계속해서.. 함께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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