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에스겔 33-36장
매일성경묵상
에베소서 5장 22-33절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래리 크랩이 지은 결혼 건축가 라는 책을 보면 성경적 부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두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안전감과 중요감입니다. 안전감은 내가 진정 사랑 받고 있으며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중요감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중요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 두 필요는 매우 현실 적인 것이며, 성경적 행동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먼저 채워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 언제 진정으로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미 결혼하기 전에 포기하고 결혼했다고 하는 분들 계십니다. 혹은 내가 배우자에게 계속적으로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중요감을 갖고 계신지요. 래리크랩은 우리의 죄가 부부관계의 긍정적인 필요를 채우는 삶을 파괴시켰다고 말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는 남녀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서로 이타적 관계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타적 관계라함은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관계 입니다. 아내가 나를 통해서 안전감을 누리고 있는가? 나는 아내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남편이 나를 통해서 안전감을 누리는가? 불안을 느끼는가? 그리고 나는 돈만 벌어다 주는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아내의 일생에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여 그 역할을 함께 나누는가? 때로는 머 그런거 신경 쓰냐고.. 그런거 없이도 잘 살아 왔다고 그런거 신경 쓰는 순간 가정의 평화는 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가 진정한 평화 입니까? 살얼음 아닐까요?
남편은 아내를 제대로 대할 수 있으려면 아내 쪽에서 먼저 남편의 안전감과 중요감을 채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먼저 채워주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관계는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상대에게 나의 필요를 먼저 채워달라고 했기에 상대는 내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셈이고, 그것을 바꿔 말하면 나를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을 서로 쥐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의 안전감의 필요를 깊이 채워 주는 관계 속에서 아내와 하나 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내도 남편의 중요감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를 통해 남편과 하나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친밀한 관계를 위해 결혼을 계획하셨고, 하나님은 이 계획을 위해 하와를 남편 아담에게 데려오시사 온전한 연합의 관계를 경험하게 하심으로 결혼의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를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은 돕는 배필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돕는 배필은 종으로 일을 부리기 위한 배필이 아니라 아담이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전감과 중요감을 채워주기 위한 배필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와의 일방적인 돕는 모습을 말씀하지 않고 에베소서 5장 21절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하심으로 상호 돕는 배필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돕는 배필로 존재하십니까? 세상에는 서로 돕는 배필이 있는 반면에 서로 바라는 배필이 있습니다. 또 포기한 배필이 있다고 합니다. 서로 돕는 배필은 상대의 부족한 것을 보면 그것이 바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느낍니다. 반면 바라는 배필은 상대의 부족한 것을 보면 바로 짜증이 납니다. 나의 필요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이야기 하면 바로 코 웃음이 나옵니다. 아내가 이야기 하면 무슨 말을 해도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 포기한 배필은 상대를 아에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돕는 배필은 내가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바라는 배필은 배우자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항상 감시자의 역할을 합니다. 포기한 배필은 역시 신경 안쓰고 처다 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배필의 모습으로 부부 생활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 완전한 연합의 모습으로 이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이 아내는 복종해야 한다는 것에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종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남편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배필입니다. 남편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 공동체를 이뤄 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