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이사야 1-3장
매일성경묵상
시편 88편 1-18절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는 <고라자손의 찬송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입니다. 표제에서는 친절하게 고라 자손이 누구인지도 밝혀 놓고 있는데, ‘에스라인 헤만’입니다. 하지만 이 헤만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왕 시대에 헤만이 있었습니다. 여두둔, 아삽과 더불어 3대 악장 중의 1명인데 문제는 그는 에스라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솔로몬왕 시대에 에스라인 헤만이 있었는데, 그는 고라자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의 곡조가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여기에 각주가 달려 있는데, 각주를 보시면, ‘병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질병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곡조는 굉장히 무겁고, 슬픈 곡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소망 없이 아픔만 노래하는 분위기 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효심이 깊은 사람도 부모님이 오랜기간 병석에 누워있으면 지치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친구는 어떻겠습니까? 시인은 오랜 투병 생활 끝이 사랑하는 자, 친구도 멀리 떠나 외로움을 호소하며 시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희망적인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서 “에스라인 헤만"이 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질병을 고쳐 주시고 그 은혜로 기쁘게 찬양하며 88편이 마무리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저의 바램과 달리 너무도 허무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시편을 여러번 읽을 때 처음에는 마치 소망없는 말씀을 읽는 것 같아 힘들었습니다. 9절에 시인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곤란한 중에 눈이 쇠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상황을 아뢰며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변에 아무도 남 지 않고, 흑암속에 홀로 외롭게 투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88편을 몇번 읽고 묵상할 때 이 시편 저자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편 저자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든 자신의 상황을 가감없이 아뢸 수 있는 사실을 찬양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런데 들어 주시는 방법은 꼭 우리의 바램과 같지 않습니다. 질병에서 낫고, 죽음을 면하고,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사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시려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아픔을 그냥 두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외면 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 뿐이지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 이상의 것을 준비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88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암송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두손을 들었나이다" 라는 고백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