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시편 148-150편
매일성경묵상
히브리서 7장 20-28절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오늘 보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그의 백성들을 위한 예수님의 보다 나은 그리고 보다 안전한 언약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22절에 사용된 보증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증”은 석방을 위한 보석금이나 혹은 서약 같은 것을 뜻하기 위한 법률 서류 등에서 찾아볼 수 있고, 딸의 결혼을 허락한 아버지가 결혼 지참금을 통해 결혼을 수락한다는 의도를 확증해주는 서약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보증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언약의 보증이 되실 수 있는 이유를 몇가지 설명합니다. 첫째는 23-25절에서 영원성 때문에 우월하다 합니다. 예수님이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과 다른 점은 아론의 뒤를 이은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은데 그 이유는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지속적으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시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의 직무는 그분의 거룩한 손 안에서 영구히 안전합니다. 둘째, 26-28절에서 예수님의 성품 때문에 우월하고 보증됨을 말씀합니다. 26절에서는 예수님 앞에서 분명하게 보여지는 이상적인 대제사장의 자질을 요약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이 자질을 경험할 수 있는데, 첫째, 인격적인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 앞에서 허물이나 실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악이 없다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간교함이나 사악함이 없습니다. 셋째, 더러움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이렇게 나열된 세가지는 예수님을 천성적으로 거룩하신 분으로 또 죄악된 인간들과 모든 관계속에서도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예수님이 우월한 점에 대해서 27절에 그분 자신을 위해 날마다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아론을 이른 대제사장은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린 다음 백성들을 위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그 어떤 희생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번의 제사를 단번에 드리는 것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드렸고 반복해서 다시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우월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세상 앞에서 꿀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깨 펴고 당당히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때 학교 친구들 앞에서 교회 다니고 예수님 믿는 것을 당당히 밝히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처럼 말과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왜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내가 믿는 예수님의 우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세상의 즐거움이 더 앞섰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여러분도 동행하는 삶 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