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민수기 18-20장
매일성경묵상
요 12:12-19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이유는 그들에게 종려나무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려나무는 대추나무로 불릴 만큼 열매가 달고 꿀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타마르는 헬라어로 포이닉스로 번역되어 존경과 기쁨, 승리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또한 시편은 의인과 종려나무를 비교합니다. 아가서에서는 고상한 신부를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거의 사막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종려나무는 풍요와 복을 의미했습니다. 종려나무는 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종려나무를 보면 물이 많은 곳, 즉 풍요로운 곳이라는 인식이 먼저 듭니다. 평화와 풍요, 그리고 대추나무 열매가 주는 꿀과 같은 맛은 그야말로 종려나무가 가진 독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상징적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첫 전쟁의 대상은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는 종려나무가 가득한 오아시스가 있는 곳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려나무가 우거진 여리고를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때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안식과 평화,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이란 단어가 연상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종려나무는 수명도 길어서 150년이 넘도록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의 열매를 꿀이라고 불렀고,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를 줄기를 잘라내도 다시 자라고, 그루터기를 불로 태워도 다시 싹이 나는 거의 불사조와 같은 나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헬라시대나 로마시대에 절대 사그러지지 않는 민족애 또는 민족정신을 뜻할 때 종려나무에 비유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동전에 종려나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종려나무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이스라엘을 뜻하는 동시에 단 하나의 줄기로 곧게 선 나무의 특성으로 인해 종종 변절하지 않는 정직함과 성실, 그리고 의인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었던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등극할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이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로마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이끌 왕으로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한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탄 예수님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귀는 뛰지 않습니다. 그래서 짐을 나르는데 이용되고 전투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한번도 짐을 실은적 없은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16절에 보면 제자들도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군중 심리에 의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의 이러한 행동은 바리새인들에게 더 큰 긴장감을 주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계획이 무의미 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복잡한 시대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는 군중들, 그 모습을 보며 불안해 하는 바리새인들, 당신의 정체성을 나귀새끼로 나타내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의도를 잘 알지 못하는 제자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바라 보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 알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순종과 겸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