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느헤미야 6-9장
매일성경묵상
사무엘상 1장 19-28장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한나는 여호와께 자신의 처지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는 라마의 집으로 돌아간 한나를 “기억”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대단한 기억력'을 지니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이나 언약의 상대를 기억하실 때 새로운 시작과 축복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는 일을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신다'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그녀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드디어 임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기억하시니 한나가 슬픔과 괴로움의 나날들을 잊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억력은 우리의 아픈 기억을 과거라는 모래에 묻어 버립니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사무엘 탄생 이전의 정황은 상당히 길게 묘사한 반면 사무엘의 실제 출생에 대해서는 단 한절로 요약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결과를 주장하시는 분이므로, 결과보다는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신실하고 진실되게 노력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강조점인 듯 합니다.
한나는 여호와께 간구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여호와께 간구하면 침울하고 어둡기만 한 그들의 미래가 화창한 봄날과 같이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자비롭고 도우시는 빛입니다. 그 빛을 간구해야 합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에 자신이 드렸던 서원을 실행합니다. 한나는 아이가 태어난 후 몇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을 찾지 않았습니다. 좀더 기다렸다가 젖을 떼면 아예 여호와의 집에 놓고 올 생각을 한 것입니다. 결국 한나는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이 좀 갈립니다. 왜냐하면 수소 세마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세마리가 아니라 3년된 수소라는 의견을 많이 갖습니다. 새번역 성경도 3년된 수소로 번역 했습니다. 하지만, 밀가루 한 에바는 율법에 수소 한마리에 10분의 3에바를 드리라고 명령한 양보다 3배 많기 때문에 밀가루 양을 따르면 수소 세마리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물의 양이 아니라, 한나의 반응입니다. 한나는 평생의 소원을 이뤄 주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아들마저도 자기 아들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드렸고, 가진 물질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은 자녀를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는 서원에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해서 어린 아이를 성전에 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한나와 사무엘의 경우는 이시대에 일어난 독특한 사건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육의 모범이라고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과 하나님과 한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 하는 모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기억하셔서 자신을 괴로움으로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도 이런 확신이 있다면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 드렸던 각오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기억하셨는데 내가 있고 있었던 일들이 있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시고,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과 했던 약속을 실행할 수 있는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