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레위기 8-10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9장 1-12절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오늘 본문에는 나면서부터 맹인된 사람을 치유하시는 여섯번째 표적이 나옵니다. 이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세상의 빛’이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생명을 얻게 하는 분임을 알려주십니다. 저는 본문을 묵상하며 두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길을 가실 때 예수님과 제자는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동시에 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맹인된 사람을 보며 “죄”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유대인들은 병이나 고난의 원인을 인과론적으로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성경에 나오는 욥의 세 친구가 바로 이런 인과론자의 대표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가운데 있는 욥에게 찾아가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욥의 고통의 원인은 죄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통해 보면 질병과 죄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징벌로 병을 얻게 되고, 그래서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과 병고의 상태로부터 구원해 준다는 것은 늘 동의어로 쓰입니다. “시편 103:3에 보면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고 하여, 한 사건을 죄 용서와 병 고침의 두 가지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맹인을 보며 “죄”의 문제를 생각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계십니다. 죄의 문제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바라 봤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습니까? 건강하고 부자로 사는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죄로 인한 결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셨듯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의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며 하나님의 빛을 발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인류를 죄로 인하여 고통의 문제를 안게 되었지만, 이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생각했던 것은 예수님의 표적이 나타날 때는 믿음과 순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도, 왕의 신하를 고치실 때도, 38년된 병자를 고치실때도, 오병이어의 현장에서도, 치유와 회복의 현장에서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이 있었기에 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은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공관 복음에서는 믿음을 보시고 말씀으로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반면, 요한복음의 표적은 맹인에게 가라 명하셨고, 맹인은 실로암에서 눈을 씻음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표적과 순종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의 표적이 있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심없이 순종하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고, 역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