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다니엘은 환상 중에 종말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천사들의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일이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습니다(5-8절). 그때 세마포 입은 천사가 종말의 때에 대해 11절에서는 적그리스도의 본격적인 핍박 이후에 1290일이 지날 것을 언급했고, 12절에서는 1335일까지 지나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1290일은 삼년 반에 30일 추가된 일수로 재림하실 주님이 심판을 행하는 기간이고, 1335일은 삼년 반에 75일이 추가된 일수로 그때는 주님의 지배체제를 시행하는 기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날짜를 프랭클린 록스돈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 초이다. 그런데 취임임은 그 다음해 1월 20일이다. 그때 약 70일간의 교체기간이 있는 것처럼 대환난의 종결과 재림하실 주님의 영광스런 즉위 사이에는 75일 간의 기간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합니까?”라는 다니엘의 질문에 천사가 명쾌하게 대답하지 않고 비유적인 형상 언어로 대답한 것은 하나님이 때에 관한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기를 거절하신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지막 때에 관한 정확한 달력을 다니엘도 알 필요가 없고, 우리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종말의 때와 그 진행과정을 정확히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깨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다니엘에게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13절).” 천사는 종말에 대해 염려하지 말고, 가서 사명을 따라 행동한 후에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를 염려하고 연구하고 걱정하는 것 대신에 사명을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숫자에 대해 100% 정확한 해석은 못해도 대신에 그 숫자가 주는 의미는 명쾌합니다. 그것은 바로 ‘안내’입니다. 믿음의 실천덕목 1호는 인내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주님을 기다린다는 말이 다 헛말이 됩니다. 신앙의 핵심요소는 주님과 주님의 역사를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인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내란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도 자제하는 마음이다.” 벼르면서 참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인내는 내가 얼마나 인내했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처럼 원망이 없는 인내가 진짜 인내입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답니다. 고난이 크면 영광도 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전에 변화산에서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즉 미래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시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쌍둥입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도 없고, 영광이 없는 고난도 없습니다. 그처럼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아들이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해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