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
에스겔 37-39장
매일성경묵상
갈라디아서 5장 1-15절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유를 누린 사람이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에 직면하게 됨을 알려 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무용지물로 만듭니다. 자유를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충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 부족하니 율법의 행위를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죠.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일의 두번째 부정적인 결과는 책무입니다. 누군가 율법의 한 부분에 복종하게 되면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할례만 받으면 될 것처럼 말해도 할례는 율법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율법을 다 지킨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할례를 받으면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갖는데, 문제는 그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일의 부정정적 결과는 그가 은혜의 영역에서 끊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4절) 은혜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자신이 구원을 얻을 정도로 충분하게 올바른 행동을 했는지 알지 못해서 늘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확신으로 살기 떄문에 늘 안전합니다.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일의 네 번째 부정적인 결과는 그것이 영적인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달음질을 비유로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영적 달음질을 가로 막고 영적으로 넘어지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갈라디아 교인들은 더 이상 진리를 순종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누룩의 비유를 들어 작은 덩어리의 율법주의가 얼마나 신속히 한 성도를 그리고 이어서 교회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진리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말하며 그들을 요동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율법으로 되돌아갔을 때 빚어지는 마지막 결과는 분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행태를 보면서 너무 화가나서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소 아시아의 퀘벨레 여신을 숭배하던 사제들이 스스로 성기를 베어버렸는데, 이들처럼 베어버리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람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주의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격분을 표출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때문에 교회가 15절에서처럼 서로 물고 뜯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 교회에서 성경 통독에 대한 시상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상에 눈이 어두워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머리속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장로님 아들인데, 한번 정도는 통독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달만에 읽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책장을 넘긴 행위만 있었고 성경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 교회에서 주시는 상을 받았지만 마음에 찔림이 남아있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성경을 다시 읽었습니다. 교회에서 상을 준다던지 누구에게 잘보일 필요도 없었죠, 하지만 성경을 읽는 일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빨리 읽지는 못했지만, 한장 한장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읽는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이 자유와 즐거움을 다시는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자유와 기쁨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십니까?
오늘의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