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을 가진 장입니다.
야고보서 1:12-18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시험은 Test 와 Temptation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Test는 믿음의 유무를 실험하기 위해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여러 방법으로 시험하시며 스스로 믿음을 점검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반면에 Tamptation 은 사단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여러 방법으로 다가 옵니다. 욥에게는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했습니다. 다윗에게는 밧세바를 범하도록 유혹함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에게 시험이 찾아 왔습니다. 사단의 유혹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을 잘 참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하며 자신이 시험 당하고 유혹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그러나, 이 시험에 대해서 야고보는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명령을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선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에게 유혹 받으실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구를 유혹하시도 않는 분입니다. 둘째, 문제는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유혹은 각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어 유혹을 받습니다. 야고보는 “각 사람” “자기”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하나님 때문도 아니고 남들 때문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적극적인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유혹에서 벗어났습니다. 반면 다윗은 유혹에 빠졌습니다. 다윗이 유혹에 빠진 것은 다윗 자신의 책임입니다. 본문에서 시험 받는 모든 과정이 수동형으로 되어 있고, 내적 욕심이 행위의 주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내 안의 욕심이 각 사람을 이끌고 미혹해서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당하는 시험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신자들을 낳으셨습니다.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는 오래전의 계획을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들이 어둠의 세상 영역에서 빛의 하나님 통치 안으로 옮기시고 다시 태어나게 하신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자녀들에게 온갖 좋은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한 관계를 흔드는 유혹을 신자들에게 하실 리 없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은혜와 신실한 보호에 대한 바른 이해는 신자가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바른 삶을 만들고, 그 삶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이 믿음 굳게하여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삶 되기를 간구합니다.
익숙함과 안정감을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렇게 차가움만 있을 것 같은 낯선 곳에도.
익숙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적정한
하나님의 은혜.
위로해 주시는 한 마디.
기대와 격려가 담긴 시선.
그리고 도우시는 섬세한 손길이 있죠.
그렇게
차가움 속에
익숙한 따뜻함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참으로 적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