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야기 동영상 강의
일년일독 성경통독
시 16-18
매일성경
잠 16:16-33
16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1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라는 말씀은 친숙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이 말씀을 인용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이에 해당하는 여러 예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여호수아가 아이성과 전투할 때 보인 모습은 “교만"이 어떻게 패망으로 이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아이성에 정탐꾼을 보냅니다. 정탐꾼이 돌아와 이렇게 보고합니다. “아이성을 치기 위해 모든 군대가 다 올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곳은 2~3천 명 정도의 병력이면 충분히 칠 수 있는 조그마한 성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3000명 정도의 병력만 보냈지만, 보기 좋게 패하여 아이군 앞에서 도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난공불락이었던 여리고 성을 기적적으로 무너뜨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만은 여러 방향으로 찾아 왔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대적인 순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루 한 바퀴씩 6일을 돌고, 마지막 7일째는 7바퀴를 돌았습니다. 전 군이 소리를 내지 않고 이 일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하나님 명령을 수행하며 기적을 이룬 것이죠. 그러나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나 하나쯤 이라는 마음이 생기고, 이정도는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삶을 삽니다. 이때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했습니다. 아간의 교만은 한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그 죄 값을 치루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교만한 사람은 상대방을 얕잡아 봅니다. 여호수아가 보낸 3000명도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 정복에 전 군이 동원된 것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아이성을 얕잡아 본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근거 없이 무시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든 상관없이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는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과 전투할 때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지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성과 전투할 때는 단 마디도 여쭤보지 않고 일을 진행합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독립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동행하시길 원하는데, 하나님을 배제한다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의 표현입니다.
교만은 교회 전통에서 말하는 일곱가지 큰 죄악 (교만, 질투(시기), 분노, 탐심(탐재), 탐식, 게으름(나태), 정욕)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죄의 모습니다.
교만에 대해서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악이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덜 나쁜 다른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옵니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악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입니다.” 다른 모든 악들은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이용하는데 교만은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순전히 영적인 악이기 때문에 육신의 모든 소유욕에 대한 금욕이 이뤄져도 교만은 존재합니다. 참으로 어렵고, 위험하고, 치명적인 죄입니다.
우리 열린교회는 교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내 스스로 겸손하다면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절에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열린교회 성도님들과 마음을 낮춰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있기를 간절함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