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역대상 26-29
매일성경묵상
출애굽기 10:1-20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 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이때 바로가 왜 마음을 완강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이성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해 놓으시고 그곳으로 가도록 유도하셨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을 연구하는 학문을 조직신학에서 신정론이라고 하는데 신정론은 사실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물든 본성에 따른 행동을 자주 묵인하고 허용하신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실 수 있지만 내버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죄가 죄로 밝히 드러나게 하심이며,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수동적 묵인을 그분의 능동적인 작업인 것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완강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무겁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 사람들은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바로의 마음은 이미 “무거워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가볍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의 죄가 들어나고 심판 받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의 능동적인 작업인거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바로와 애굽은 거듭된 심판을 받고 여호와의 능력과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더욱 밝히 드러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알게된 바로는 자신의 교만함과 죄를 내려 놓고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함에도 끝까지 하나님과 거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누가 나갈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예배는 가족이 모두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에서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성인 남자 였지만, 예배를 드리는 일, 율법을 지키는 일,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바로의 반응이 10-11절입니다. 개역개정성경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새번역으로 읽으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는 안 된다! 가려면 너희 장정들이나 가서, 너희의 주에게 예배를 드려라. 너희가 처음부터 바란 것이 그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바로는 큰 인심을 쓰듯이 장정만 나가서 예배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믿는 자들 모두가 함께 해야하는 일입니다. 섬길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힘든 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은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은 남녀노소를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주일학교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서 이기도 하지만 주일에 교회 보다는 학원에 많이 가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할 책임이 있음에도 어른들만 예배드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의 선택이라는 생각으로 예배드리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모두가 함께 예배드리는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억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암송 5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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