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11-1편
예수님의 난해한 말씀 15
일년일독 성경말씀 민수기 11장 - 14장
오늘의 말씀 말씀 - 눅 12:35-48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너희는 마치”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마디로 주인의 “종”입니다. 본문에서 사용되는 종은 둘로스라는 헬라어로 사고 팔수 있는 노예를 뜻합니다. 로마 시대에는 자유민 뿐 아니라 노예도 청지기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설명처럼 실제로 청지기는 주인의 부재 시 집 전체를 관리하고 주인의 사업을 경영하는 책임을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말씀하시는데, 무엇보다도 “주인이 오는 것을 깨어 준비” 하도록 하십니다. 준비하는 세가지 모습을 말씀합니다. 첫째, 허리를 동여매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옷은 길게 늘어지는 모양이어서 급히 달리려면 옷을 단단히 묶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매고 달렸습니다. 특히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허리를 동여매고 신속히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둘째, 제자들은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등불을 켜고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셋째,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때 즉각 문을 열어 줄 수 있도록 깨어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 종들에게는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대기 상태로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긴장한 상태로 영적인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정신 차리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늘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은 시기 적절한 말씀을 늘 주신다는 것입니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되면서 살짝 느슨해 진 마음이 있었고, 주일을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또 조금 느슨해 진 마음이 생깁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이런 마음이 늘 공격합니다. 그런데, 어김없이 말씀을 통해서 제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 주십니다. 저는 깨어 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종에게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37-38절을 헬라어로 읽어보면 “복되다 그들은” 이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가장 피곤한 시간에 주인이 오더라도 깨어 준비하는 종은 그 자체로 복 되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조금은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종에게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 식사를 섬긴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주인은 예수님을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을 ‘섬기는 자’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그런 모습을 실현하실 것입니다. 특히 35절의 동여 매다로 번역되는 페리조뉘마이라는 단어는 37절의 띠를 “띠다”와 같은 동사 입니다. 제자들에게 준비하도록 명령하신 예수님이 직접 섬기시는 장면은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강화합니다. 종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데도 주인은 종의 위치로 내려가 제자들을 보상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보상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물질적으로, 사회적 지위로, 정치적 힘으로 보상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보상은 꿈 깨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좋은 보상은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 그분과 함께 식사하는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과연 복된 보상일까? 라는 의심을 했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사회적인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재정적인 걱정 없이 살고 싶기도하고, 남들처럼 힘을 가지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면, 그런 보상은 덧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더욱, 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만을 원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꿈을 갖는 것이 가장 큰 복이고 보상임을 고백합니다.
“마라나타” 는 신약에 기록된 아람어로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나오는데 이는 초대 교회 성도님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로, “우리 주여 오소서”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마라나타”를 되새겨 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는 열린교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