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일독 성경 말씀
민수기 8-10장
매일 성경 묵상
눅 12:13-34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예수님이 핍박 가운데서 신실한 신앙을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예수님께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누게 해 달라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속권을 찾아 보면 원칙적으로 아들에게만 상속권이 있고, 아들 중에서 장자는 탁월한 우선권을 누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자는 형제들보다 아버지의 재산을 갑절이나 상속합니다. (신 21:17) 장자가 이렇게 상속을 많이 받는 이유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까지 봉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형이 유산을 다 가로챘다면 이 사람의 불만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중재자가 되기를 거부하면서 그가 중재를 요청한 동기를 탐심으로 규정하시며 생명의 가치는 소유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탐심의 배후에는 불안이 존재하고, 불안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많이 소유해야 한다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알지 못한 채 탐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예로 들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예화에서 한 사람이 풍성한 소출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탐심이 발동해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에 곡식과 물건을 저장하려 합니다. 그는 곳간을 만들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나의"를 강조합니다. ‘내 곡식', ‘내 곳간', ‘내 물건', ‘내 영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느날 그의 영혼을 데려가시자 자기를 위해 준비한 재산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부자는 지혜로운 계획을 세웠다고 확신했으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로 규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거두실 ‘나의'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자신을 위해 쌓는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었으나 ‘하나님에 대하여’ 쌓은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탐심을 채우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부자가 되려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요해 지는, 즉 깊어지는 것이 미래를 위한 최고의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현실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먹고 입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대표하기 때문이죠. 이 문제를 무시하며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로 염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염려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메림나오 (나뉘다) 외에 “메테오리조마이"가 사용됩니다. 보통의 경우 마음이 나뉘는 뜻의 메림나오가 사용되지만 오늘 본문에서만 메테오리조마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높이다"는 뜻이 있습니다. 은유적으로 마음을 높이는 것, 헛된 소망을 품는 것, 우유부단 해서 머뭇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물질적인 부에 대해서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높은 태도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추구하거나 스스로 부의 원천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염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사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높아지거나, 생명의 한 시간이라도 더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역 성경에서 “키"로 번역된 헬리키아는 생명의 길이 혹은 신체의 크기를 말합니다. 따라서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는 말씀은 “마음이 높아지더라도 생명의 길이를 한시간이라도 더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너희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다른 사람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제자로서의 삶 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