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6일 토요일: 민수기 1-4장
7일 주일: 민수기 5-7장
2021년 2월 6일 새벽예배
눅 11:37-54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을 때 한 바리새인이 점심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위해 앉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놀랍게) 여깁니다. 손 씻지 않는 것은 단순히 청결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의 문제로서 정결 예법을 준수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손님과 집 안 전체를 부정하게 만들고 만찬을 망치는 요인이 됩니다. 특히 백성들을 가르치는 예수님이 기본적으로 예법도 준수하지 않는 모습에 놀란것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을 알아차리신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겉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속도 만드셔서 모든 것을 아시는데, 겉만 깨끗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죠.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과하게 잘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당하게 될 세가지 화를 언급하십니다.
먼저, 42절에 보면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를 드렸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채소의 십일조는 구약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것에 십일조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은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랑을 베풀며 살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중의 인정과 인기를 즐겼습니다. 더 많은 인기와 더 높은 지위를 누리기 위해 종교 시설이 회당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을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에만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셋째, 바리새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무덤 위를 밟는 사람은 부정한 무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덤인지 모르고 그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덤안에는 시체가 썩고 있고, 그 무덤을 밟은 사람은 부정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덤처럼 바리새인들의 내면은 누구보다 탐욕과 악독으로 부정합니다. 겉은 품격있게 단정했지만 속은 죽은 자들의 뼈가 보관된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속이 그렇게 썩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 옆에 서서 그들을 존경까지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부정함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부정함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받은 율법 교사 중 한사람이 예수님께 그런 비판은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항의합니다. 바리새인들에 대한 지적이 율법 교사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사회의 근간인 정결과 부정의 기준을 뒤흔들고 이런 기준을 지키고 가르치기 위해 헌신하는 자신들을 폄훼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항의에 예수님은 다시 세가지 화를 선언하십니다.
첫째, 율법 교사들은 자기도 지기 어려운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면서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짐을 지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해박한 율법적 지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일일이 지적하고 부정하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고충은 덜어주지 않고 지적만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둘째, 율법 교사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율법교사들의 조상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입니다.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율법 교사들은 조상들의 증인이 되어 조상들의 행위를 옳게 여깁니다. 율법교사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 선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 교사들의 해석과 반대되는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율법 교사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워 선지자들을 죽음으로 몰아 세웠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죽일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해석에 반하는 사람들을 신성 모독으로 몰아 세우는 것입니다.
셋째, 율법 교사들은 지식의 열쇠를 갖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가로 막는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독점적인 지식을 근거로 수 많은 규례를 만들고 강요하지만 실제로는 비본질을 본질로, 본질을 비 본질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본질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정결 규례를 준수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납니다. 율법 교사들은 성경에서 명확하고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보다 모호하고 본질적이지 않은 사항을 구체화하고 목숨처럼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밥 먹기 전에 열심히 손을 씻는 정결 예식을 수행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뭣이 중요한디? 라는 영화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요즘시대에는 손을 씻는 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가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손을 씻는 것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자가 아니라 정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적 의미를 붙들었지만, 그 근본적인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그대로 살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