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레위기 25-27장
매일성경말씀: 눅 11:27-36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등불의 비유는 8장 16-17절에 사용되지만, 등불이 가리키는 대상은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등불의 속성과 그림이 사용되지만 비유의 초점이 다른 것이죠. 8:16 에서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제자들이나 신자들을 지칭한 비유였습니다. 복음을 수용하고 말씀대로 사는 제자들이 등불이므로 사람들은 제자들을 통해 빛을 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등불을 눈으로 규정합니다. 빛이 등불을 통해 즉 예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좋은 태도를 통해 몸에 들어와 몸을 빛으로 채우게 됩니다. 빛으로 채워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어둠의 인생에서 빛의 인생으로 인도하며 빛의 인생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임을 말씀합니다. 등불의 비유가 8장과 초점을 달리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등불 비유는 어떤 한 여성이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나고 기른 여성은 복 있다고 말할 때 하셨습니다. 이 여성의 마리아에 대한 평가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노래에 보면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1:48) 라는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벳도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면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1:4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마리아가 받은 복은 인류중의 단 한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없는 복이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부모에 대한 평가가 자녀의 신분에 의해 결정되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점을 강조하고 싶으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으로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삶을 복되다고 평가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축복의 유무를 판단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 성공한 자녀를 두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 등등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복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 주시는데, 복은 받은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듣고 행하는 자가 복되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함은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나타나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믿기 때문에 자동차를 탈 수 있고, 내일 아침에 일어날 것을 은연중에 믿기 때문에 잠자리에 편히 들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임을, 하나님임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기에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가리켜 악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대의 특징은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들을 인정하지 못할 때 표적을 요구합니다. 즉, 완고함과 불신이 표적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과거 출애굽을 경험하고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처럼 악한 세대는 완악합니다. 악한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던 조상처럼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신뢰로 받아들이기보다 표적을 보여 자신을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외에는 그들에게 주어질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물고기 뱃속에 3일간 있었고, 심판을 설교한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경고한 인자도 ‘이 세대’에 표적입니다. 심판의 때에 니느웨 사람들과 다르게 반응한 이스라엘의 악한 세대가 완고함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하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대 뿐 아니라 지금의 세대도 마찬가지로 악한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속에서 풍요를 즐기며, 산업과 기술의 발달을 의지하며 인본주의 사상이 팽배해 진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여주면 예수님을 믿겠노라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깨달았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말하며 하나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를 믿으며 말이죠…
우리는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빛을 감추지 말고 빛을 들어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