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10-1 동영상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일년일독 성경 말씀: 출 18-20
매일성경말씀 눅 7:36-50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성경을 읽으면 바리새인들이 갖는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러한 노력은 세상과 구별된 삶이 아니라,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 다른 이들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의 특징으로 생각했습니다.
둘째,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동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7장 29절과 30절에 보면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침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침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죄인들은) 침례요한이 베풀고 있는 회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난 모습으로 살겠다는 믿음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삶의 모습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회개와 침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러한 현상을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버렸다는 것은 원래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을 잃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그들은 이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살펴 보십시오.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9절입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가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줄 알았으리라 하거늘.” 바리새인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시험하고자 예수를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위해서 식사하자고 초청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바리새인 시몬과 대조되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자라는 신분 자체가 대조적입니다. 여자라는 신분은 유대 사회에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는 미천한 존재였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을 한마디로 소개할 때 죄를 지은 한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여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바리새인인 시몬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그 동네에서는 유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당연히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여인입니다. 아니, 그 바리새인 집에 들어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어떤 결과를 얻었나요?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 여인은 영적인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평안도 얻었습니다.
이 여인은 바리새인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이 여인은 눈물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리새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 합니다. 불청객의 등장으로 썰렁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예수님 뒤에 섭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는데 말을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냥 눈물만 쏟아질 뿐입니다. 이 여인이 흘린 눈물은 어떤 눈물일까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 내가 깨끗하게 살지 못한 죄송함의 눈물, 그 동안 무시받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던 서러움의 눈물, 이 모든 눈물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흘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둘째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맞춤을 드렸습니다. 발에 입맞추는 행위는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충성의 서약입니다. 이사야 49장 23절에 보면, “왕들이 네 자녀를 보살펴 줄 것이며, 왕비들이 네 자녀를 돌볼 것이다. 그들이 네 앞에서 엎드릴 것이며, 네 발의 먼지에 입맞출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내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의지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발에 입맞추는 것은 "당신에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라는 서약입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이런 입 맞춤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히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분에게 충성을 다하며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이 여인은 겸손함으로 향유를 드렸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 향유를 드리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눈물을 흘린 것,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것, 입 맞춤의 행위는 준비 없이도 가능했지만, 향유를 드리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나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정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재능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향유 옥합을 발에 부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향유를 팔아 현금으로 바꿔서 그것으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하거나, 그것을 저축해서 노년을 대비한다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깨드렸을 때 제자들이 돈으로 계산하면서 아깝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준비한 그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욕심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예수님은 그 여인의 겸손한 태도를 발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인의 겸손한 태도를 통해서 이 여인은 다른 사람도 이와 같이 섬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셨기 때문에 받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여인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들어와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이 한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발이에요... 왜 발에 시선이 갔을까요? 창피해서... 쑥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이 여인은 주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겸손했습니다. 자신을 낮췄습니다. 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으로 향유를 붓는 여인을 주님은 말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이런 겸손함으로 주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주앞에 나아가십니까? 바리새인의 모습입니까? 이 죄있는 여인의 모습입니까?
매일 한시간씩 주 앞에 서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