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7:1-22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2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4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15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
16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9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20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22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언제부터인지 교회 마당 창고 앞에 방치되다 시피한 아래와 같은 깃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낡아 보이지만 “Rejoice”라는 글이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무시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동영상 촬영을 위해 교회 갔을 때 더 강하게 이 말씀이 들어옵니다. “기뻐하라…”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기뻐하고 있는가? 무엇을 기뻐하며 살고 있는가?
기뻐하지 못하던 내 자신을 돌아보며 기뻐하라는 명령을 듣는 듯 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매일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데, 오늘 말씀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말씀으로 훅 들어온 “기뻐하라"는 명령에 내 자신을 돌아 봅니다.
우리는 기뻐하는 이유가 있을 때 기뻐합니다. 5-6절의 말씀처럼 “길을 그가 이루실 때" 기뻐합니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고,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실 때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기뻐하면 그가 네 마음이 소원을 네게 이뤄 주신다고 합니다.
한참을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순서를 다르게 하며 살아갑니다. 원하는 것이 이뤄지면 기뻐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냥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소원 성취 먼저, 그리고 기쁨”이 나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 대수인가? 세상 사람들은 돈도 잘 벌고, 자녀들도 잘 되는 것 같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데,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불평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기 때문에 “잠잠하고 기다리라… 불평하지 말라"고 하며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서 제가 제 생각을 옮기는 것 보다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책의 저자 존 파이퍼 목사님의 글을 옮기는 것이 좋을 듯해서 글을 옮깁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기 바라지만, 혹시 너무 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요약해서 말씀드립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과연 얼마나 생각하며 사는지 스스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면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더 기쁨이 충만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존 파이퍼목사님의 책 “하나님의 기쁨"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7년전에 읽었던 헨리 스카우걸의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인간 영혼 안에 숨 쉬는 하나님의 생명)을 서가에서 끄집어 냈다. 한장 한장 내가 표시한 밑줄과 기록, 느낌표가 남아 있었다. 순간 책을 읽으며 찾아왔던 감동이 되살아 났다. 책을 읽다 보면, 통찰력이 심오하고 강렬해서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큰 종소리와 같은 울림으로 진리를 심어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 소리는 자주 나는 게 아니었기에 그 만큼 소중하다. 그런 책은 인간과 하나님의 마음을 놀라운 빛으로 조명해 주어서 진리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 진리를 내 심장에서 새롭게 창조하기까지 한다.
헨리 스카우걸의 책을 다시 읽었다. “인간의 영혼은 … 그 안에 꺼질 줄 모르고 불타오르는 갈증은 안고 산다.” 내게도 이와 같은 갈증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그것을 자신을 지으신 분에게 내어 드리지 않고서는 어떤 영혼도 진정한 기쁨과 본질적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내 안에는 이 ‘타오르는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픈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이 책이라는 ‘너른 초장'에서 양식을 먹는 동안 내게 그런 열망이 일었다.
오늘날의 많은 책들은 사람 냄새만 진하게 날 뿐 하나님의 아름다운 주권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헨리 스카우걸은 다르다. 그는 ‘그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묵상에 완전히 삼킨 바 된 것 같은 사람'이다. …
스카우걸의 책을 읽다 보면 ‘신의 사랑의 탁월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다 어떤 한 문장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 뒤 3개월 동안 그 문장을 내 묵상의 화두로 삼았다. 스카우걸이 이 문장에서 말한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보물 창고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성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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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걸은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즐겁고 기쁜지 이야기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신의 완전함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 완전함 때문에 인간 영혼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려놓고 희생한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원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연합하는 일만큼 즐거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닝믈 위해, 아니 그분의 기쁨을 위해 어떤 것이라고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어떤 어려움도 감당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대상이 바르면, 그 영혼의 기쁨은 그보다 능가할 게 없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풍성한 기쁨,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즐거움은, 바른 대상을 향해 최선의 애정을 쏟아 부을 때 비로서 맛볼 수 있다.
… 가장 탁월한 영혼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영혼이다. 또한 그러한 사랑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만큼, 딱 그만큼 사랑하는 영혼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영의 가치와 탁월성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명제는 인간보다 하나님께 더 합당하다. 사랑은 영혼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열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열정이 사랑을 완성하고 행복으로 이끄는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이 품으신 가장 강렬하고 큰 열정이며, 하나님의 승인과 기쁨과 즐거움의 절대적 에너지라면, ‘하나님의 기쁨'은 그 영혼의 탁월성을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이점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카우걸의 통찰력은 놀랍다. 그가 맞았다면 하나님의 탁월성을 묵상하는 한 길은 하나님의 기쁨을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한 가지 길은 그분의 환희를 보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할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가간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바라보고 기뻐하는 대상을 닮아간다.
하나님의 기쁨 안에서 하나님의 탁월성을 앙망한다면, 또한 앙망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면, 하나님의 기쁨에 집중할 수록 하나님을 닮을 수 있다. ‘바라보는’ 것은 ‘되는’ (닮는) 방법의 일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하나님의 탁월성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이 기쁨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그분의 형상을 닮을 수 있다. - 존 파이퍼
열왕기하 9장, 디모데전서 6장
호세아 1장, 시편 119편 73-96절
오늘의 암송 요절
로마서 12장 18-19절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