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7일
- ncyeollin

- 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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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18-30]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먼저 내가 너희 모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제자들을 향한 깊은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의심이 전체에게 번지지 않도록 선을 그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십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다윗의 배신 경험이 메시아에게 그대로 반복될 것임을 성경은 오래전부터 예고했습니다.
배신은 예수님을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이미 포함된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길을 눈 뜨고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21절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여기서 심령이 괴롭다는 표현은 영이 뒤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정 없는 신이 아니셨습니다. 배신자가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분의 영혼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이 괴로움은 약함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배신이 아프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요한으로 추정)에게 눈짓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조용히 묻습니다. "주여 누구니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말로 지목하지 않으시고, 떡 한 조각을 적셔 건네십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주인이 손님에게 떡 조각을 손수 건네는 것은 최고의 환대와 존중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님은 배신자에게 마지막까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구원의 손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30절에는 성경에서 가장 짧고 가장 무거운 문장 중 하나가 등장하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여기서 "밤이러라"는 단순한 시각 표현이 아닙니다. 유다가 빛이신 예수님 곁을 떠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을 요한은 이 문장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입니다. 3년을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그 손길을 뿌리치고 밤으로 나갔습니다. 그의 비극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욕망과 의심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품에 기댄 제자, 요한입니다. 그는 주님 가까이 있었고, 주님께 직접 물었으며, 주님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서 느꼈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 두 자리 사이에서 선택합니다. 예수님 곁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움켜쥐고 밤으로 나갈 것인가.
유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이 말씀은 "일이 이루어질 때에 내가 그인 줄 믿게 하려 함"입니다 (19절). 배신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선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 — 그것이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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