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5일
- ncyeollin
- 12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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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5일
[시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125:1-5]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4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124장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수 많은 억압 속에서 살았었는데 그 때 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왔기 때문에 그들이 멸망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는 내용의 찬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8절의 말씀입니다. 8절에 보면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도움이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고 하셨을까요? 시편은 찬송 시이기 때문에 의미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첫째, 여호와라는 이름은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우리 히브리어로 야훼인데. 야훼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동의 하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호렙산에서 만났을 때 모세가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갔을 때 그들이 누구를 만났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합니까?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문장이 영어로는 I am who I am 입니다. I am 이라는 히브리어는
에히에..라는 단어인데요.. I am 의 3인칭 He is 라는 단어가 야훼의 자음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야훼는 하나님이 스스로 I am 이라고 부르신 것에 대해서 모세가 He is라는 반응을 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왜 추측밖에 할 수 없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자음으로 He is라고 쓰고, 뭐라고 읽었냐 하면 아도나이.. (주님)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수백년이 흐른 뒤에 진짜 모음이 뭔지.. 불확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도나이의 모음을 He is의 자음에 붙여 읽으니까.. 여호봐.. 야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야훼라고 불려진 것이 아니라.. I am Who I am 의 의미에요.. 나는 스스로 있는자다.. 라고 번역하는 것도 철학적이고 의미가 많이 담겨져 있지만 히브리어로 생각하면 굉장히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에는 현재, 미래, 과거 형이 없습니다. 완료와 미 완료형만 있어요.. 그래서 I am이라는 단어가.. 현재 형이 아니라, 때로는 과거형으로 해석 될 수도 있고, 미래형으로, 그리고 많은 경우 현재형으로 해석 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나다..라는 문장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다. 미래의 내가 미래의 나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다.. 등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위대하신 하나님의 이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의 이름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칭하는 이름 명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수 백년 동안 경험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뭐라고 불렀나요?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후에 아말렉과 전쟁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싸움이었지만 그가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경험 한 후 뭐라고 하나님을 불렀습니까? 여호와 닛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들의 삶에서 경험되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여호와샴마, 여호와샬롬, 여호와로이, 여호와 치두케누(우리의 의), 여호와 메카디쉐켐(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나케(벌하시는), 여호아 체바오트(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사바욕 (만군의) 이렇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아시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시 꽃..)
이름을 부를 때 의미를 갖습니다. 이름을 부를 때 경험하게 됩니다. 이름을 부를 때 관계가 형성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그들의 존재가 되었고, 그들의 삶의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도움이 여호와의 이름에서 왔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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