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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4일




[느5:1-19]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느헤미야 5장은 백성들의 큰 부르짖음으로 시작됩니다.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니." 그들이 부르짖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2절부터 5절까지 우리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듣게 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자녀가 많은 가정들이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곡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노라." 기근이 심했던 그 시절, 가족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녀들이 굶주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두 번째 부류는 토지를 저당 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고 이 기근에 곡식을 얻노라." 그들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소중한 땅을, 자신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포도원을, 그리고 살던 집까지 담보로 잡혀야 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왕의 세금을 내기 위하여 돈을 빌리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을 담보로 하였도다. 우리의 몸은 우리 형제의 몸과 같고 우리 자녀는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이 된 자가 있으나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소유가 되었으니 속량할 힘이 없도다."

페르시아 제국의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가난한 백성들은 돈을 빌렸습니다. 그러나 고리대금으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팔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피붙이를, 자신의 살과 뼈를 나눈 사랑하는 자식들을 노예로 팔아야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일입니까?

5절 후반부의 절규는 우리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이 된 자가 있으나... 속량할 힘이 없도다." 이미 딸들이 종으로 팔려갔는데, 그들을 다시 사올 능력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여자 종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 착취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성적 착취와 학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딸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혈육이었고, 같은 조상을 둔 민족이었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들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함께 돌아와 함께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고통을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어하는 거룩한 의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하는 분노였습니다.

8절에서 느헤미야는 강력한 논리로 그들을 책망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에게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대로 속량하였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에게 팔리게 하겠느냐?"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바벨론 포로 생활 동안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던 형제들을 속량하기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돈을 모았고, 희생했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속량한 바로 그 형제들을, 당신들이 다시 노예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말이 됩니까?

느헤미야는 두 가지 차원에서 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증언의 차원입니다. 당신들의 이런 행동이 이방인들 눈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저것 봐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서로 착취하고 억압하는구나. 그들의 하나님도 별 것 아니구나." 우리의 불의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외의 차원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이렇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신앙은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은 우리의 경제생활에서,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의 일상적 결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1절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과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곡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그들에게 돌려보내라."

'오늘이라도' - 이것은 시급성을 나타냅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다음 주가 아닙니다. 다음 달이나 내년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정의의 실천은 미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구체적인 배상을 요구합니다. 저당 잡은 땅과 포도원과 집을 돌려주고, 받은 이자를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변화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14절부터 느헤미야는 자신의 총독 재임 기간 동안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총독으로 재임했습니다. 총독은 페르시아 왕이 임명한 지방 장관으로, 상당한 권한과 특권을 가진 직책이었습니다. 총독에게는 공식적인 급여, 즉 녹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녹봉은 백성들의 세금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 녹봉을 받지 않았습니다. 12년 동안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5절이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받았고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이전 총독들은 공식적인 녹봉 외에도 백성들로부터 많은 것을 착취했습니다. 양식과 포도주를 요구했고, 은 40세겔이라는 거액의 돈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종자들, 즉 부하들도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총독의 권력을 이용해 뇌물을 받고 백성들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삶의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백성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6절은 더 나아갑니다. "내가 또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였으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느헤미야는 단지 녹봉을 받지 않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직접 성벽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총독으로서 그는 감독만 하고 지시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과 함께 땀을 흘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종자들도 함께 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땅을 사지 아니하였습니다." 많은 귀족들과 부유한 자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땅을 팔 때, 그들은 싼 값에 그 땅을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재산은 더욱 불어났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고통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17-18절은 느헤미야의 관대함을 보여줍니다.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매일 느헤미야의 식탁에는 150명이 앉았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민장들, 그리고 주변 이방 족속들 중에서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을 매일 자기 비용으로 대접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음식이 필요했겠습니까? 본문은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소 한 마리, 살진 양 여섯 마리, 그리고 많은 닭들이 매일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가 갖추어졌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용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술 관원장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상당한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백성들을 섬기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총독의 녹을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백성의 부역이 중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세금을 내야 했고, 성벽을 쌓는 일에 참여해야 했고, 자신들의 생계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어깨는 이미 너무 무거운 짐으로 짓눌려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거기에 총독의 녹이라는 추가적인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그 지위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도력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상에서는 지도자가 되면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더 많은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리더십은 다릅니다.

마태복음 20장 25-2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은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나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어떤 지도자입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섬기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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