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2일
- ncyeollin
-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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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2일
[슥14:12-21]
12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13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14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 때에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요
15 또 말과 노새와 낙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가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오늘 본문은 조금 당혹스러운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12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든 백성을 치실 재앙은 이러하리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열방에 임하는 끔찍한 심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폭력적인 이미지 앞에서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미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죄의 파괴적인 본질과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의 교만과 반역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지식의 팽창, 인간 이성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스가랴는 그 모든 인간적인 노력이 결국 어떤 결말을 가지고 올 것인지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라.” 하나님을 떠난 인간 문명의 최종적인 모습은 서로를 붙잡고 파멸하는 자기붕괴적인 혼돈을 가져 옵니다. 이는 외부에서 오는 심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가 가진 내재적인 속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공멸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심판과 혼돈의 그림 한가운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것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서로 싸우던 바로 그 '남은 자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스가랴는 도덕적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면 복 받고, 악하게 살면 벌 받는다"는 식의 단순한 인과응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극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당신을 대적했던 원수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의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습니다. 스가랴가 묘사한 그 끔찍한 재앙, 살이 썩고 눈이 멀어가는 그 고통을 십자가 위에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크게 요란하게" 되는 그 혼돈의 중심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물어 새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국적과 인종, 배경을 넘어 한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는 거대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가랴가 보았던 '구속'의 환상이며, 오늘날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스가랴의 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듭니다. 20절과 21절은 그날에 일어날 가장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말 방울'은 당시에 가장 평범하고 세속적인 물건 중 하나였습니다. 전쟁과 상업에 사용되던 말에 달린 장식품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대제사장의 관에나 새겨지던 "여호와께 성결(HOLY TO THE LORD)"이라는 문구가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聖)과 속(俗)의 구분이 사라지는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성전 안에서 특별한 사람만이,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방식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가장 평범한 일상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가 된다는 선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스가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회복'의 최종적인 그림입니다. 죄로 인해 시작된 모든 전쟁과 다툼이 그치고, 원수 되었던 자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의 모든 일상이 거룩한 예배가 되는 세상. 이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혼돈 속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삶 속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우리의 모든 순간이 "여호와께 성결"이 되는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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