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 ncyeollin

- 11월 3일
- 3분 분량
2025년 11월 4일
[스4:1-10]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에스라 3장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로 일어나 제단을 세우고, 성전 기초를 놓으며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4장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대적들이 나타납니다.
대적들은 세가지 전략으로 다가 왔습니다.
첫째 전략은 위장된 협력입니다. 위장된 협력에는 두가지 모습이 있었는데 먼저는 아름답게 포장된 제안입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얼마나 아름다운 제안입니까? "우리도 함께합시다.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도 제사 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룹바벨이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와, 감사합니다! 인력도 부족한데 함께하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반응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이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1절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 협력자가 아니라 대적입니다. 친구가 아니라 적입니다.
또한 혼합주의의 위험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열왕기하 17장 24-41절을 보면 이 모습이 자세히 나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앗수르 왕이 이방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동시에 자기들의 신도 섬겼습니다. 열왕기하 17:33절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그들이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syncretism) 입니다. 여호와도 OK, 바알도 OK, 아세라도 OK.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겉으로는 관용적이고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리를 희석시키고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위장된 협력에 대해서 스룹바벨과 지도자들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3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얼마나 단호합니까? "상관없다", "홀로 건축하리라".고 답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보고 "너무 배타적이지 않나? 왜 저렇게 경직되게 행동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배타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순수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함께", "포용", "열린 마음"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가치입니다. 하지만 모든 협력이 선한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 전략은 지속적인 방해 입니다. 거절당한 대적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4절입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주목하십시오. "손을 약하게 하여" - 이것이 핵심입니다. 적의 목표는 물리적 파괴가 아니었습니다. 의욕을 꺾고, 열정을 식히고, 믿음을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손을 약하게 만들었을까요?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너희가 성전을 지으면 페르시아 왕이 가만있을 것 같아? 반역으로 몰릴 거야!" 의심을 심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시는 거 맞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려?" 또한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너희끼리도 의견이 다르잖아. 누가 옳은지 어떻게 알아?" 낙심하게 만들었습니다. "70년 동안 방치된 폐허를 재건한다고? 꿈 깨. 불가능해."
5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더라"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린 것이 BC 538년, 다리오 왕 즉위가 BC 522년. 약 15-20년간 지속적인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성전 재건은 중단됩니다.여러분, 이것이 적의 전략입니다.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지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략은 조직적인 반대입니다. 본문에 보면 적들은 체계적인 반대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6절에 보시면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고소장을 씁니다. 7절에는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 공식적인 탄원서를 보냅니다.
대적들의 전략을 요약해 보면 1단계는 위장된 협럭, 2단계는 직접적 방해 그리고 3단계로 법적인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 되어 갔습니다. 사탄의 공격은 갈수록 교묘해 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분별력을 가져야합니다. 모든 협력 제안이 선한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타협하라는 제안 앞에서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하십시오. 야고보서 1: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고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손을 약하게”만들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조직적인 반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 54:17절, "너를 치려고 만든 모든 무기가 쓸모 없을 것이라" 오늘 본문에서 성전 재건은 중단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에스라 6장 15절, 성전은 결국 완성됩니다. 중간에 15년 넘게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무산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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