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예레미야 45-48장
매일성경묵상
에베소서 1장 1-6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교인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칭합니다. 첫째로, 그들을 성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일부사람들을 가리키며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가리켜 성도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무리 즉, “성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하도록 따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라는 표현은 처음에는 ‘거룩한 나라'인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되어 사용되었지만, 후에 기독교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
둘째, “신실한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피스토스"인데, 이는 능동적인 의미로 “믿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뜻일 수 있고 수동적인 의미 “믿음 만한”, “신실한"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은 수동적인 의미로 “믿을 만한" 혹은 “신실한"이라고 번역하지만, 여기서는 능동적인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음의 가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명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그리스도인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정이 된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각 지체가 몸에 있듯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구별된 성도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실함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를 쉼 없이 한 문장으로 써 내려 가는데 가장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 택함 받은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거절을 경험한 분은 택함의 기쁨을 압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한번쯤 거절당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학교에서 특활 반을 모집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핸드볼 반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핸드볼은 민첩해야 합니다. 인기있고 운동 잘하는 친구들은 핸드볼반에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택함을 받았는데 어디에서 택함을 받았냐 하면 씨름반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한학기 동안 웃통 벗고 씨름하다가 너무 창피해서 그만 둔 기억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은 이런 택함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나 같은 죄인을 택하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 만으로도 우리는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5절에 하나님이 예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정하셨다는 것과 택하셨다는 말은 비슷합니다. 두 단어 모두 의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정하심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로봇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혹시 실패하는 경우에 자신의 삶을 비관 합니다. “나는 원래 그렇게 예정된 사람이야….”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할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정이라는 말은 나의 행동까지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도록 의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구원받도록 의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살도록 의도되어 있습니다. 비행기 티켓은 목적지로 우리가 갈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비행기 표를 가지고 있어도 그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 엉뚱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막무가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부활 신앙을 갖게 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정하심은 예정하심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예정되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예정을 깨달았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어떤 것에 비유해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건 그냥 놀라움이에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그냥 그 은혜가 놀랍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택하심과 예정하심이 은혜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혜로 주다”는 동사는 한국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동사입니다. 신약 성경에 딱 두번 등장하는 동사인데, 누가복음 1장 28절에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라고 불렀을 때에 사용된 동사입니다. 이 단어는 은혜를 받다..라고 번역해도 되는데, 그렇게 번역하면 맛이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래 직역하면 “은혜를 은혜롭게 주다”라는 식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은혜가 공짜로 받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거저라는 표현을 덧붙였습니다. 바울은 마리아가 받은 은혜를 동일하게 경험했습니다. 도저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 동사를 사용하여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조건부로 주셨다면 우리는 찬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체험했다면 우리는 찬양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