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신명기 5-7장
매일성경묵상
시편 73편 1-16절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저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문화에서 성장했습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우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슬픈 영화를 보거나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해도 눈물 흘리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고, 억지로 눈물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의문점에 대해 제대로 질문도 못하고 무조건 암기하고 외워야 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거나 의문을 갖는 것에 대해서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갖게 되었고, 친구들이 울면 남자가 우냐! 하며 놀리고, 교회에서는 그것도 모르냐! 라며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괜찮은 척 하는 것이 남자 답고 신앙인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마음 놓고 울어본 적도 없고, 답답한 마음 표현 한 적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상태로 오랜 동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시편 저자의 자유로운 표현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2절에 보면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힘들고 어려웠던 마음의 상태를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더 당황스럽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고 합니다. 그가 힘들고 어려웠던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악인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그 부요함이 질투나고 부러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투 느낀 적 없으신가요?
악한 자들의 형통함에 대해서 4-9절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표준 새번역으로 다실 읽어 볼까요?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 그들의 나들이옷이다.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여러분, 만약 옆집에 사는 사람이 매일 술먹고, 싸우고, 부정을 행하는데, 사업은 번창하고 병원에는 한번도 간 적이 없고, 자녀들도 공부 잘하는 것 같으면 여러분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의문이 생깁니다. 상대적으로 초라한 내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심하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지난 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일들이 고통으로 다가 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상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위로 받은 이유는 첫째로,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고통 받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너도 13절의 말씀처럼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천년 전에 시편 기자 뿐 아니라 수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말씀을 읽으며 함께 동의했던 내용이라는 사실이 일단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로가 된 이유는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의문이 들어도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감히 인생이 헛되다고 말할 수 없었고, 고통이 있다는 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습니다. 그냥 아파도 참아야 했고, 의문이 들어도 아는 척,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답답한 마음을 부여 잡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기자는 너무도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16절에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이해해 보려고 무척이나 애썼지만 그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했던 질문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악인이 왜 형통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은 여전히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답답함을 토로하듯 질문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숨김없이 다가 오기를 원하십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신앙 생활 수십년 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 가능한가? 이런 의문.. 표현할 수 있을까? 답답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지 마시고 답답함을 토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확인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