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6일
일년일독성경통독
민수기 34-36장
매일성경묵상
요 13:18-30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18절의 말씀은 17절과 강력한 대조를 이룹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시며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분위기를 극적으로 변화시며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하십니다.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여기서 발꿈치를 들었다는 표현은 노새가 뒷발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노새 뒤로 갔을 때 예기치 않게 걷어차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배반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배반의 사건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의 식사 분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처럼 테이블에 앉아서 상석에 앉은 사람의 말을 모두가 집중하며 조용한 가운데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반쯤 비스듬히 누워 시끌벅적한 상황속에서 삼삼오오 서로 자기들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 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기대 누워 “주여 누구이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설마 누가 스승을 팔수 있을까?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정색하고 큰 소리로 물어봤을 텐데..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물어보는 분위기 였습니다. 이에 예수님도 그 사람을 지목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떡 한 조작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고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줍니다. 이 장면을 다른 11명의 제자가 모두 지켜 봤다면 가룟 유다를 비난하던지,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 사실 여부를 물어봐야 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각자 이야기를 하느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마태복음의 내용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22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큰 소리로 그를 지목하여 “유다가 나를 팔려 한다!” 하지 않으셨지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못 들었는지, 유다를 신뢰했는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두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택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외모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유다가 재무를 담당했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신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모르게 돈에 손을 대었고, 결국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게 됩니다. 사람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단의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공동체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가룟유다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들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된 것도 하나님의 예정하심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 사람 아닙니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묵상했듯이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을 것입니다. 단지 가룟유다는 이 과정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것 뿐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지 정보를 넘겼습니다.
사실 유다는 예수님에게 기회를 얻었습니다. 떡 한 조각을 찍어서 주신 것은 유다를 지적하시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사인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유다에게 허락하시는 마지막 은혜의 기회였습니다. 손님에게 떡 한 조각 주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우정의 행동을 유다는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배반했던 것입니다. 악한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악한 생각을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늘 깨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