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은 5장 1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믿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튜온'은 현재형이고 '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겐네타이는 완료시제입니다. 이 시제가 중요한 이유는 시제에 따라서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먼저요 믿음은 그 다음임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 혹은 증거가 되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으로(4:15; 요9:22)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를 분별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절 하반부에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4:21을 반복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낳으신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겐네산타'는 '낳다'다는 의미의 동사 '겐나오'의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서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낳으시고 자녀삼아 주셨으며 친히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요한이 이같이 하나님을 '낳으신 이'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과 신자들을 가족 관계로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죠. 또한, '그에게서 난 자'로 번역된 헬라어 '게겐네메논’은 단수형입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나(Augustine)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문법상 단수로도 집합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인 전체를 지칭할 수 있으며, 문맥상 본문이 믿음과 모든 그리스도인들 간의 사랑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또한 하나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합니다. 요한은 본절에서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 사랑의 불가 분리적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인간에게는 숨길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재채기, 가난 그리고 사랑" 이라고 합니다. 재채기 참기 어렵습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숨길 수는 있어도 가난 한 사람이 가난을 숨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죠. 사랑의 표현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빛, 손길, 말투…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사랑이 나타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전혀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서로 싸우고, 음란한 삶을 살고, 급기야 배교하여 교회를 떠나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 사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무엇입니까? 좋아하는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사람을 존경하며, 그 사람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요한이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 끝없는, 변함없는, 충성된 사랑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사랑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기쁨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난 자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그 사랑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