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찬양
일년일독
예레미야 30-31장
매일성경묵상
시편 69:19-36
19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22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23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 주의 분노를 그들의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가 그들에게 미치게 하소서
25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26 무릇 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27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하사 주의 공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32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33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36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다윗은 말년에 자녀들의 반역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시편 69편은 어제 말씀 드렸듯이 압살롬 혹은 아도니야의 반역으로 인해 고통가운데 지은 시편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다윗의 자신의 힘든 상황을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아뢴 뒤, 구원을 간구합니다. 오늘 본문은 19-21절, 22-28절 그리고 29-36절까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단락은 주께서 아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두 번째 단락은 원수들을 향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은 찬양입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찬양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즐거울 때만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도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은혜를 찬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안다라는 단어는 구약에 자주 사용되는 야다(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고 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를 안다고 할 때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피상적인 앎이 아니라 깊은 관계속에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자신의 상황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다 헤아리십니다.
21절부터 다윗은 대적을 향한 탄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저주의 시편으로 알려진 부분입니다. 그들의 밥상, 그들의 눈, 그들의 거처, 그들의 죄악, 그들을 등등의 표현을 유의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밥상은 원수들이 평소에 누리던 물질적 부요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들의 평안은 화인 맞은 양심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누리는 부와 그러면서도 평안한 그들의 삶을 지칭하는 말들입니다.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원수들로 하여금 눈이 어두워 더 이상 의인을 해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라는 간구는 히브리인들은 허리를 힘의 원천으로 여겼습니다(욥 40:16). 그러므로 '허리를 떨게 하소서'라는 말은 그들이 힘을 잃고 나약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비유적 표현인 것입니다.
25절의 거처는 '둘러싸다', '둥글게 묶다'라는 뜻의 '투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유목민들의 둥글게 둘러싼 천막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거처가 황폐케 되고 그곳에 거하는 자가없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26절은 다른 번역 성경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번역입니다. “그들은 당신께 맞은 자를 새삼 괴롭히며 당신께서 주신 상처를 덧 쑤십니다.” 쉬운 성경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책망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며, 주께서 때리신 사람들의 상처를 입으로 쑤셔 댑니다.” 현대어 성경입니다. “저들은 주께 얻어맞은 이들을 더욱 못살게 굴며 주께서 주신 상처를 자꾸 더 쑤셔 댑니다.”
다윗은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상처를 쑤셔대는 사람들을 생명이ㅡ 책에서 도말해 달라는 저주까지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인이 이렇게 저주의 기도를 해도 되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주하지 않으면 좋습니다. 좋은 말만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을 만나며 뒷 담화 하고, 다른 사람 욕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린 후에 다윗은 그 마음에 회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찾아갑니다.
30절부터 다윗은 본격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노래합니다. 다윗이 이 기도를 드릴 때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 앞에 문제가 있습니다. 죽이려 하는 무리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온 우주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황소를 드림 보다 노래로 주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쁘시게 받는 예배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황소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단 한가지 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저는 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간절함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열린교회가 성령 충만함으로 예배드릴 때 세상 어느 교회의 예배 보다도 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