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암송 60구절
일년일독성경말씀
시편 89-91편
매일성경묵상
잠 28:1-18
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 나라의 반란으로 주권자는 많고, 명철과 지식이 있는 사람에 의해 그 나라는 오래 지속된다.
3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가난한 자는 곡식을 남기지 아니하는 폭우 같으니라
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5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6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10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11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2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5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
18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수년전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오랜기간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정의였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덜 교수가 지은 이 책이 날개 돋친듯 팔렸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세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공리주의자들의 시각으로 “정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으로 ‘자유 시장에서 어떠한 가치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 보장되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이 견해 속에 있는 세부적인 방법에는 여러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데, 칸트는 이성에 기초한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존 롤스는 자유는 모두가 평등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것이 중요한 전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공리주의자적 시각과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으로 정의를 규정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공리주의 시각에서 최대 다수가 행복한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며, 인간의 행위 가치를 수적으로 측량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 행위 가치를 수적으로 측량하지 못하는 문제는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이론 모두의 문제점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이나 윤리 등의 문제는 측량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불임인 부자 미국인 부부가 인도의 가난한 여성을 대리모로 삼아 아이를 얻었다고 한다면, 불임 부부는 아이를 얻어서 행복하고, 가난한 대리모 여성은 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수 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최대 다수가 최대로 행복하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대리모는 옳은 행위입니다.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봐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인 부부와 인도 여성은 서로 자유 의지에 따라 합의하에 대리모 계약을 맺고 아이를 얻었습니다. 누구도 강요한적도 강제한 적도 없습니다. 서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니 옳은 행위입니다. 그러나 과연 옳은 행위인가요? 정의인가요?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 가치는 이런 시각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우선되어야 하는 가치가 있고, '정의' 가 실현되기 위해 꼭 지켜져야만 하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클 센델은 세번째 시각을 제시하는데, “미덕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합니다. 즉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고 일부가 행복한 것이 아닌 더불어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주의를 지향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말은 좋은데, 이 또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주의가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속 시원하게 “정의"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어려울까요? 각자의 기준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처한 상황이 달라서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불완전한 인간이 정하면 늘 불완전한 정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정의를 의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악인이 정의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늘 세상과 부딪치고 싸우게 됩니다. 반면에 각자의 기준이 아니라 여호와를 찾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준을 마음에 담을 때 우리는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 시대에 맞는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아버지 세대의 정의가 자녀 세대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실현되는 정의가 미국 사람의 관점에서는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 즉 사랑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정직하게 서로를 대하며 은혜로 서로를 품는 정의를 깨닫고 실천할 때 정의를 비로소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