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시편 77-79편
매일성경말씀
잠언 26:1-16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오늘 본문 1-12절은 미련한 자의 삶의 태도를 은유와 직유를 섞어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여 ‘미련한 자의 책’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13-16절은 게으른 자의 삶의 태도를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조롱하여 게으름을 피하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명령형의 훈계가 아니라 묘사를 통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 대한 평가는 본문에서 가혹합니다. ‘여름에 눈처럼 추수 때 비처럼,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자연 질서를 거스릅니다. 추수 때 내리는 비는 수확한 곡식을 썩게 만듭니다. 자연 질서가 뒤집히는 일만큼이나 미련한 자의 ‘영예’는 적절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라도 자녀들이 미련한 자의 삶을 살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미련한 자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련한 자는 마치 잘못 설계된 도면처럼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에게 주는 영예는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에게 영예는 공격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어깨에 힘주고 떵떵 거리며 다니기 때문이죠. 9절에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든 가시나무 같다고 하십니다. 잠언은 좋은 것이죠. 우리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잠언은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술취한 사람은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가시 나무를 휘두릅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잠언을 마치 술취한 사람이 가시 나무 휘두르듯이 사용합니다. 어제 묵상한 말씀 20절에 “20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라고 하셨는데 미련한 자의 잠언 사용은 이같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자신은 잠언이라고 생각하며 했던 말들, 영예로운 일이라고 했던 일들이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삶을 살까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보일 수 있다고 12절에 말씀합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진짜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착각에 빠져 사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이들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돌아 보지 못합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나마 미련한 자는 미련한 일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미련함을 깨닫기만 하면 개선할 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이제 13절부터 16절은 게으른 자에 대한 이야기 형식의 교훈의 말씀입니다. 고대 지혜자들은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동일시 하여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여겼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고 풍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말하며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며 집에만 머물고 싶어 합니다. 또 그들은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돌듯이 침대위에서 돈다고 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고, 결국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 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게으른 자가 게으른 행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 미련한 자, 게으른 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이런 삶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들이 IQ가 낮아서 그런 삶을 살까요? 결코 아닙니다. 머리가 좋고 나쁜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몇주 전에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이들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없거나 돌아보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련하다는 것, 게으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은 잔소리로 듣고, 고집만 쎄서 그 삶을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미련함과 게으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미련함,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 내 자신을 돌아보며 미련함과 게으름을 고치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