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히브리서 3-4장
매일성경묵상
사사기 21장 13-25절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통해서 서로 무자비하게 죽일 때는 생각을 못했지만, 막상 베냐민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을 전멸시키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400명을 데려다 베냐민 지파와 결혼할 수 있도록 넘겨 줍니다. 그런데, 여전히 여인의 숫자가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딸은 줄 수 없고, 베냐민이 멸절하게 놔 둘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생각을 하는데, 실로의 여인들은 납치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에게 포도원에 숨어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면 각각 하나를 붙들어 아내를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도록 권면합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를 회복하기 위하여 학살과 납치를 강행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맹세가 원인이지만, 잘못된 맹세를 어떻게해서든 지키겠다는 고집과 정치적인 판단이 가미되어 이런 행동이 합당하다는 신념으로 변하여 일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진멸시킨 길르앗의 야베스 주민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인것이 확실한 것은 길르앗 출신 사사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진술하는 자신들의 입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삿11장] 그런데 과연 이 길르앗 사람들은 어느 지파에 속한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점은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이 의문을 풀어주는 유일한 열쇠는 길르앗 사람들과 암몬과의 전쟁이 끝난 후 길르앗의 승리를 시샘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시비에서 엿보게 되는데[사12장] 그들이 말하기를 "... 길르앗은 에브라임 중에서 도망한 자들이 므낫세 갓 지파에 숨어 들어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에브라임도 아니고 므낫세 혹은 갓 지파 사람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애매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후한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단한 것입니다. 약자를 정치적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로에 대해서도 비슷한 자세로 접근했습니다. 장로들은 실로의 아비와 형제들에게 할 말을 두가지로 준비했습니다. 먼저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라는 식의 희생 강요입니다.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라는 국가의 위기를 두고 딸 정도의 호의는 베풀어 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죠. 이것은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선택사항이 없는 고단수의 강요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는 그 아비나 형제들이 자의로 처녀들을 준 것이 아니므로 맹세의 저주에 대한 죄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아무 잘못한 것이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법의 정신(spirit of the law)은 무시하고 법의 문자(letter of the law)만 어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자들이 하는 합리화입니다. 그들은 합리화 한 자신들의 논리와 힘, 권력으로 약자들을 설득하고 눌러버럽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들은 하나도 희생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아주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은 마지막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더라”는 말씀으로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 뜻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얼마나 교활해 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인지 다시한번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다스릴 왕임을 알려 주십니다.
앤 그래함 여사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딸입니다. 그 분도 아버지를 이어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수년전 우리 나라를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기자가 ‘21세기의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세련된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앤 그래함 여사의 답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21세기 여성뿐아니라 전 세기를 통해서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는 ‘죄’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성들이 필요한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것이 그녀의 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성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죄문제를 해결할 우리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