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고린도후서 7-9장
매일성경묵상
사사기 13장 15-25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사기 13장에서 우리는 삼손의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어제 우리가 묵상한 본문에서 삼손의 부모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블레셋에게 40년간 통치를 받은 것은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였고, 정복한 땅 없이 산 속에서 떠돌아 다니던 것은 단 지파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노아 가족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남모를 고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 아들을 주시기로 한 것입니다. 가망 없는 곳에 희망을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적으로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남편은 그 사람이 다시 한번 방문하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그렇다면 마노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이 사실임을 확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면 마노아의 행동은 꾸밈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노아는 사자의 메시지를 그대로 믿습니다. 그는 아들을 낳을 것이며 부모가 될 것이고, 그 아이는 나실인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람이 주는 지시라면 무엇이든 순종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로 다시 찾아 왔고, 마노아는 “일어나 아내를 따라감”으로서 단순한 믿음을 다시 보여 줍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하나님에 대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계를 지닌 사람임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동안 대화했던 사람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여호와를 사자를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은 사람”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마노아는 이어서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기묘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기묘하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기묘”가 그의 이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마노아가 자신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에게 말해 준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에 대해 묻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설 수 었던 것은 그들에게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마노아의 부인은 그랬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기드온의 이야기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그의 말을 듣는 것는 사실상 여호와를 보고 그분의 말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노아는 경외심에 눌려서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습니다. 23절입니다. “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마노아의 아내에게서 처녀의 몸에서 아들을 나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했던 마리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절박한 상황중에 있었지만, 순수한 믿음을 가졌고,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작은 태양”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부족하지만, 순수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향한 확신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